"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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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735회 작성일 17-05-23 10:15본문
1107 칼럼
2010 새생명축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창4장
질문을 통한 교육
소크라테스 이후로 교육하는 방법에 있어서 대화법, 혹은 질문법, 산파술 등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질문을 통하여 자신의 지식을 확인하고, 의문의 실마를 푸는 일을 하게 됩니다. 질문을 통해 생각을 명쾌하게 만드는 질문법은 교육방법으로서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확실히 좋은 질문은 사고력을 증진시킵니다.
질문하시는 하나님
하나님도 사람을 교육하는 방법으로 질문을 사용하십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대화를 하는 장면이 창세기 3장 9절에 나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 하와의 양심은 죽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나무 사이에 숨었는데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은 나무 뒤에 숨어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대리인이니 늘 하나님을 대면해야 정상이었습니다. 그 땅을 다스리는 대역사를 감당해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순간 그는 하나님을 바로 볼 수가 없어 숨어들었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라는 질문은 아담의 존재 위치를 알려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두 번째 질문
아담의 시대가 끝나고 아들 세대가 되었습니다. 가인과 아벨 두 형제가 아담과 하와의 뒤를 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추수 때가 되어 수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얻은 소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형 가인이 드린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고 동생 아벨이 드린 감사만 받으시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가인은 화를 냈습니다. 무슨 연유로 받지 않으시는가? 왜 하나님은 동생을 편애하시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화를 누를 수가 없습니다. 형으로서의 자존심이 다 뭉개졌습니다. 참을 수가 없습니다. 들에 같이 있는 순간을 맞아 가인은 아우 아벨을 쳐서 죽였습니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두 번째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대답을 거절하는 가인
하나님은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상황을 지켜보시고 가인을 찾아와 물으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 가인은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I don't know!” 그런 다음 그는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모른다고 한 말은 거짓입니다. 자신이 죽였습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불리하면 무조건 아니라고 잡아떼며, 제일먼저 거짓말부터 배웁니다. 이 세상을 부패하게 하고 더럽게 하는 제일 큰 악은 거짓말입니다. 정직하지 않은 것은 제일 문제입니다.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는 질문은 저항적이고 도전적입니다.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하여 거짓말을 넘어 아예 공격적으로 대합니다. 거짓을 감추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동생을 지킬 수 없는 사람
경쟁의 사회, 자기중심의 사회는 자기보존에 바쁩니다. 남을 돌아볼 틈이 없습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남을 보는 척할 뿐, 실제로 위기가 닥치면 대부분 자기뿐입니다. 남을 지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모든 책임을 모조리 인격도 없는 정부에 떠넘겨버립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셨다
지켜야 할 사람을 지키지 못하므로, 하나님이 드디어 아들을 보내어 지키려하십니다. 자신의 목숨을 버려 아우로 대변되는 모든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그 아들이 여러분을 지킬 수 있고, 살릴 수 있습니다. 그 아들 앞에 서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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