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귀향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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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78회 작성일 17-05-23 10:17본문
2/23 칼럼
"당신은 귀향할 수 없습니다"
거부된 고향행
오늘 칼럼의 제목은 제 말이 아닙니다. 어느 포털 사이트에서 방송 뉴스 기사를 올리면서 붙인 제목이었습니다. 섬찟한 선언입니다.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동포들의 귀에나 익은 언어 같습니다. 귀향할 수 없다는 말은 눈앞에 고향을 두고도 평생에 가 볼 수 없어 슬퍼해 온 실향민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느낌을 줍니다. ‘귀향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구제역 파동 때문에 설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정부의 권장사항일 수도 있고,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민들의 호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 말이 가진 의미가 크게 파동이 되어 옵니다.
전통적으로 설날은 까치까지 좋아하는 날입니다. 먹을 것이 넉넉한 기분 좋은 날입니다. 떡도 있고 홍시도 있고 배도 사과도 맛볼 수 있는 풍성한 날입니다. 친척들이 모여듭니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납니다. 큰아버지 삼촌 고모 이모 등등 종류도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대합니다. 때때옷을 입고 이집 저집을 방문하며 절을 합니다. 돈도 생깁니다. 복주머니를 차고 돈 넣는 재미가 보통 쏠쏠한 게 아닙니다. 이런 광경이 설날 광경입니다. 그런데 ‘고향에 갈 수 없다’니요!
고향으로 가야 한다
고향은 우리 모두의 삶의 근거지입니다. 도시에서 자라 별다른 고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고향의 정취를 모릅니다. 학교를 오가며 진달래 따먹고, 밀 이삭을 잘라 구워먹던 그 향긋한 기분을 알 턱이 없습니다. 메뚜기를 잡아 줄에 꿰어차고 사이다 병에 집어넣으며 온 천하를 소유한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을 어찌 알겠습니까? 여름이면 졸졸 흐르는 시내에서 미꾸라지를 잡던 맛은 아는 사람만 아는 것입니다. 그런 고향으로 귀향하지 말하는 것은 단순히 설날에 부모형제를 못보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말입니다.
구제역 파동 때문에 고향에 가지 못할 뿐 아니라, 농림부 장관은 가문에 빛인 자리까지 내놓아야 할 판입니다. 이번 파동으로 재정이 3조원 가량 투입될 정도라고 하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초기대응 미숙으로 이런 엄청난 재앙이 닥쳤다는 주장이 제기되니 할 말이 없습니다. 친박 친이 논쟁도 소용없습니다. 재앙은 재앙일 뿐이고 귀향을 할 수 없는데 무슨 변명이 소용있겠습니까?
그래도 이건 약과입니다. 일반인들이야 수입산 소고기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고, 농민들은 실거래가로 보상을 받으니 어떻게 하든 위기를 넘길 것입니다. 오히려 수산물은 대체소비의 영향으로 훨씬 소득이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한쪽의 위기가 다른 쪽의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고향으로 가게 하라
문제는 ‘당신은 귀향할 수 없습니다’는 말을 인생의 종말에 듣게 되면 어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생이 끝나는 날 ‘당신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선언을 듣게 되면 뭐라고 할 것입니까? 우리는 돌아갈 고향이 있음에 얼마나 감사하고 있습니까? 육신이 고향을 찾는 이 계절에 다시한번 영혼의 고향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고향 가는 것이 거부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못가는 줄도 모르고 그냥 하루하루 살기에 바쁜 고향없는 사람들. 주변을 둘러보아 이 외로운 사람들에게 고향을 보여주는 교회. 그런 교회로 우뚝 서 가기를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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