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할 수 없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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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28회 작성일 16-10-17 09:39본문
오만할 수 없는 인생
변화하는 무척산 기도원
지난 시월 첫 주일 오후, 우리는 무척산에 올랐습니다. 한 해를 결산하는 새생명 축제를 하면서 고신교회 영성의 원천과 같은 ‘그 산’ 위에서 기도하며 힘을 얻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기도의 용사들이 찾았던 그 산에서 우리도 함께 영적 능력을 얻기를 갈망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시온성 가족 모두를 새롭게 하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현재의 무척산은 이전과 다른 곳이 되었습니다. 1952년부터 명향식전도사님이 원장으로 정식 취임하여 기도원을 운영하셨고 고신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고향처럼 여기는 곳이지만 지금까지는 그냥 하나의 사설기도원이었습니다. 명전도사님의 뒤를 이어 표지현전도사님이 2대 원장으로 수고하셨습니다. 표전도사님은 남성미(!)를 풍기는 영적 여성 거인이셨습니다. 그 때만해도 밤마다 새벽마다 예배를 인도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표전도사님이 경기도 파주의 서울여전도회 기도원을 맡아 떠나신 후 명전도사님의 따님이신 송은파 전도사가 원장 직을 이었습니다. 한창 때만큼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무척산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찾는 사람들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수년전까지 우리교회가 겨울용 땔감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기도원을 찾는 열기가 식어져 갔습니다. 전국 기도원 대부분이 겪는 현실입니다. 기도원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3대 송은파 원장은 고려신학대학원을 31회로 졸업한 분이었고 다른 원장들과는 분위기부터 달랐습니다. 송전도사님은 무척산 산정에서 살아도 늘 도회지 냄새를 물씬 풍겼습니다. 그 산에서 아주 멋진 커피 잔을 사용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천성적인 취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산에 살며 기도원을 이끌고 산을 찾는 식구들이 줄어들어도 몸을 움직이기 힘들 때까지 원장으로 수고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제 무척산이 바뀌었습니다. 고신대학이 큰 뜻을 품고 영성원으로 삼고자 무척산 기도원 운영권을 인수하였습니다. 대단히 과감한 결정을 한 것입니다. 700고지의 가파른 산에 오르면서 기도할 사람이 이제는 거의 사라져 버리고, 어쩌면 너무 얄팍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가는 시대에, 고신대학교는 어떻게 이렇게 용감해졌는지 모를 일입니다. 아직 눈에 보이는 외형적 변화는 없었습니다만 이제 곧 그 변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
무척산에서 시작된 구원(!)의 역사
오늘 이렇게 길게 무척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기도원에 오른 그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음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늘 건강하게 테니스도 열심히 치시는 김성술장로님이 입원을 하셨다는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협심증이 발견되어 스턴트 삽입 시술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심장의 혈관이 좁아져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 계기가 바로 무척산행이었습니다. 10월 2일 산을 오르다 가슴에 통증을 느껴 산행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9일 토요일 이웃초청 배드민턴대회에 참가하면서 다시 통증을 느끼는 바람에 병원을 찾게 되었고 협심증임을 발견하고 즉각 시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교회가 행한 무척산 예배와 배드민턴 대회 때문에 김장로님은 정말 위험할 수 있는 경우를 면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주일 아침마다 되새겨보는 대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내일 무슨 일이 내게 벌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일마다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인생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오만합니다. 마치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은혜로 사는 길, 우리가 전할 메시지입니다. 오늘, 그리고 이 가을에 이 메시지가 널리 선포되기를 소망합니다.
변화하는 무척산 기도원
지난 시월 첫 주일 오후, 우리는 무척산에 올랐습니다. 한 해를 결산하는 새생명 축제를 하면서 고신교회 영성의 원천과 같은 ‘그 산’ 위에서 기도하며 힘을 얻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기도의 용사들이 찾았던 그 산에서 우리도 함께 영적 능력을 얻기를 갈망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시온성 가족 모두를 새롭게 하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현재의 무척산은 이전과 다른 곳이 되었습니다. 1952년부터 명향식전도사님이 원장으로 정식 취임하여 기도원을 운영하셨고 고신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고향처럼 여기는 곳이지만 지금까지는 그냥 하나의 사설기도원이었습니다. 명전도사님의 뒤를 이어 표지현전도사님이 2대 원장으로 수고하셨습니다. 표전도사님은 남성미(!)를 풍기는 영적 여성 거인이셨습니다. 그 때만해도 밤마다 새벽마다 예배를 인도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표전도사님이 경기도 파주의 서울여전도회 기도원을 맡아 떠나신 후 명전도사님의 따님이신 송은파 전도사가 원장 직을 이었습니다. 한창 때만큼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무척산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찾는 사람들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수년전까지 우리교회가 겨울용 땔감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기도원을 찾는 열기가 식어져 갔습니다. 전국 기도원 대부분이 겪는 현실입니다. 기도원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3대 송은파 원장은 고려신학대학원을 31회로 졸업한 분이었고 다른 원장들과는 분위기부터 달랐습니다. 송전도사님은 무척산 산정에서 살아도 늘 도회지 냄새를 물씬 풍겼습니다. 그 산에서 아주 멋진 커피 잔을 사용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천성적인 취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산에 살며 기도원을 이끌고 산을 찾는 식구들이 줄어들어도 몸을 움직이기 힘들 때까지 원장으로 수고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제 무척산이 바뀌었습니다. 고신대학이 큰 뜻을 품고 영성원으로 삼고자 무척산 기도원 운영권을 인수하였습니다. 대단히 과감한 결정을 한 것입니다. 700고지의 가파른 산에 오르면서 기도할 사람이 이제는 거의 사라져 버리고, 어쩌면 너무 얄팍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가는 시대에, 고신대학교는 어떻게 이렇게 용감해졌는지 모를 일입니다. 아직 눈에 보이는 외형적 변화는 없었습니다만 이제 곧 그 변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
무척산에서 시작된 구원(!)의 역사
오늘 이렇게 길게 무척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기도원에 오른 그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음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늘 건강하게 테니스도 열심히 치시는 김성술장로님이 입원을 하셨다는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협심증이 발견되어 스턴트 삽입 시술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심장의 혈관이 좁아져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 계기가 바로 무척산행이었습니다. 10월 2일 산을 오르다 가슴에 통증을 느껴 산행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9일 토요일 이웃초청 배드민턴대회에 참가하면서 다시 통증을 느끼는 바람에 병원을 찾게 되었고 협심증임을 발견하고 즉각 시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교회가 행한 무척산 예배와 배드민턴 대회 때문에 김장로님은 정말 위험할 수 있는 경우를 면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주일 아침마다 되새겨보는 대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내일 무슨 일이 내게 벌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일마다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인생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오만합니다. 마치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은혜로 사는 길, 우리가 전할 메시지입니다. 오늘, 그리고 이 가을에 이 메시지가 널리 선포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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