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의사’ 장기려 박사 주간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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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510회 작성일 15-12-15 09:51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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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의사’ 장기려 박사 주간을 만들었습니다!
장기려박사 이야기 콘서트
장기려 박사. 우리 세대에게는 너무도 유명한 이름입니다. 이번 주간 16일부터 트리축제로 바쁜 광복로에서 열흘에 걸쳐 장박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행사를 가집니다. 금년은 그가 세상을 떠난지 꼭 20년이 되는 해이고 마침 장박사님은 12월 25일 새벽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성탄의 빛으로 가득찬 광복로에서 기념행사를 가지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장박사님의 역사를 보면 평양 연합기독병원에서 외과과장을 하셨고, 평양도립병원 원장을 지내시고 평행 의과대학 외과교수를 지내셨습니다. 평양에서 선교하다 순교하신 월리암 제임스 홀 선교사를 기념하여 세운 기홀병원의 원장도 지내신 분입니다. 그는 북한에서 의사로서 사명을 수행하다 남쪽으로 내려와서도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의료사역을 계속하셨습니다. 복음병원은 무료병원으로 시작되었고, 무의촌 봉사가 장박사님의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때문에 해방 70년이요 분단 70년인 올해에 그를 다시 역사 앞에 떠올리며 그가 보여준 사랑의 정신으로 남북이 하나 되기를 소망하는 것은 아무 적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침 광복로에 있던 부산은행의 지점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빈 공간으로 남아있어 그곳을 갤러리로 꾸미고 전시를 합니다. 또한 첫날인 16일 저녁에는 수영로교회에서 첫 번째 장박사님과 관련하여 토크 콘서트를 열기 시작하여 매일 밤 여러 초청 인사들과 장소를 바꿔가며 그를 둘러싼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열흘간이라는 짧은 기간만이라도 부산을 장기려 박사 이야기로 채워보려 하고 있습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한 진실한 사회봉사가로서의 의사 장기려
‘바보 의사’라 불리는 장박사는 우리 고신 교단의 직영 병원인 ‘복음병원’ 창설자 중 한 분이기도 합니다. 고신 교단의 설립자이신 한상동 목사, 거창고등학교 설립자 전영창 선생과 함께 제2 영도교회에서 시작한 구호활동이 1951년 무료로 진료하는 복음의원 설립으로 발전하고 마침내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복음병원으로 우뚝 서는 일이 가능하도록 하신 분이 장기려 박사입니다. 그는 의사이자 사회봉사가이며 무엇보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해야 어울리는 분입니다. 그는 성경 연구에도 힘을 기울였으며 글도 많이 남겼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간암 절제수술에 성공한 분입니다. 청십자 병원을 세우고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하여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제도를 열 수 있도록 만든 분입니다.
장박사님은 무교회주의자로 알려진 김교신 선생과 동일한 사상을 가진, 신학적 문제가 있는 것처럼 알려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생 부산 괴정에 있는 장대현 교회(평양에 세워졌던 교회)에서 찬양대원으로 섬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무교회주의자들처럼 기존의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지낸 세월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건 평양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기홀병원에 근무하게 되면서 그는 신양감리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강대상에 선 목사님이 이런 말로 예배인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번 주부터는 황국신민서 낭독을 시작으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장박사님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는 황국의 신민이다. 충성으로 군국에 보답하련다. 우리 황국신민은 신애, 협력하여 단결을 굳게 하련다.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 단련하여 힘을 길러 황도를 건양하련다’ 거기에 동방요배까지 실시하였습니다. 그걸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가의례라고 변명하는 소리를 듣고 그는 그냥 예배당을 빠져나왔고 그 후로 가정예배로 주일예배를 대신하기로 하였다고 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고 진정한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것은 주님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임이 분명합니다. 이번 기회에 장박사와 함께 믿음의 깊은 자리에 함께 들어가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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