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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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642회 작성일 16-01-19 09:47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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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지난 금요일 오전 11시 CBS 기독교 방송국 문영기 부산본부장의 취임식이 있었습니다. 부산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을 맡다 보니 날더러 취임식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방송국에서는 15일 수요일에 취임식을 하려 했으나 그날 나는 대구에서 집회를 인도하기로 되어 있다고 했더니 그렇다면 금요일로 미루어 취임식을 열겠다고 알려왔습니다. 아이구~ 미안했습니다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역사있는 기독교방송이 나 때문에 취임식을 늦춘다? 서울 본부와도 연결되어 있을 것인데, 그렇게 해도 되는 건가 했지만 방송국이 흔쾌히 그렇게 하도록 하였습니다.
본래 취임식과 같은 종류의 날에 하는 설교는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취임하는 분을 만나 축하하고 식사하며 교제하는 것이 본래 모임의 이유이기 때문에 설교는 지나가듯이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열심히 준비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설교학적으로 잘 갖추어진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에 맞는 몇 마디를 성경에 걸쳐서(!) 하면 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때로 순서지 인쇄를 위하여 본문과 제목을 미리 달라고 하기 때문에 무엇을 설교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상황에 맞는 메시지를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산 CBS의 김홍민 국장은 한 주간이 시작되자 본문을 달라고 독촉하기 시작합니다. 대구에서 주일 오후부터 집회를 인도하도록 부탁받았기 때문에 월요일은 이미 마음이 집회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우선 앞에 부닥쳐있는 설교를 해 가야했기 때문에 본부장 취임식은 머리 속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자 독촉이 계속되어 할 수 없이 본문을 머리 속에서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사야 40장 본문이 떠 오릅니다. 방송국이니까 무조건 소리를 높여야 하고 특히 기독교방송국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요즘 부쩍 작아져 버린 느낌을 주는 CBS는 제대로 소리를 높여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높인 소리가 부패한 정치계를 향한 것이었다면 지금 높여야 할 소리는 지나치게 세속화한 교회와 세상 전체를 대상으로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40장 9절을 본문으로 택하고 나니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이 장(章)에 들어서면 포로 시대를 상정하며 예언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상황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앞선 39장까지와는 달리 회개보다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했다는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위로가 쏟아집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나는 CBS방송국이 이제 절망이 시대적 노래가 된 이 땅에서 소망의 소리를 높이는 역할을 감당할 것을 주문하였습니다. 광야에서 사막에서 하나님의 대로를 내는 사명을 다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상징적인 곳인 예루살렘을 향하여 소리를 높이라고 하였습니다. 소리 높여 할 일은 단 한 가지.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얻어야 함을 역설해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여기서 방향이 틀어졌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우리가 마주치고 있는 광야 같은 이 세상이란 과연 어떤 곳인가? 전혀 생각지 않았던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오늘 국회의원들을 보라.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예 법을 지키지 않는다. 선거구를 지난 연말까지 획정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도 국회의원들은 그냥 지나간다. 법을 어긴 범법자들을 다시 국회의원으로 뽑아야 하는가? 나는 3백명 전원을 교체해야 맞다고 본다. 어떻게 법을 마음대로 어기는 사람들이 다시 법을 만드는 자리에 오늘 수 있는가?” 그러다가 문득 자신을 봅니다. “너는 하나님의 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그러면서 설교자의 자리에 계속 서서 큰 소리 칠 수 있는가?” 아찔해 집니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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