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산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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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731회 작성일 16-03-02 11:15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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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산으로 갑니다
굳이 무척산을 오르는 것은
오늘 우리는 오후예배 시간에 무척산에 오릅니다. 그 곳에서 지난 해에 이어 삼일절 87주년 기념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정상까지 701미터 정도인 무척산이지만 오르는 일이 제법 힘이 듭니다. 빠르면 30분에도 오를 수 있지만 아무래도 한 시간은 걸려야 기도원에 도착합니다. 아마도 한 시간 넘게 걸리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왜 굳이 무척산에 가야 하는지 물으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예배당에서도 얼마든지 기념할 수 있는데, 산에 오를 수 없는 분들도 적지 않은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생각은 인생의 소금이다. 음식을 먹기 전에 간을 보듯 말과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라.” 맞는 말입니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해야 합니다. 산에 오르도록 결정하기 전에 생각을 하였습니다. 삼일절. 민족의 정기(精氣)를 보여준 1919년 3월 1일. 일제의 혹독한 식민지배 속에서도 결코 민족정신을 잊을 수 없었던 우리의 선조들은 그날 온 천하에 대한민국은 일본의 속국이 아니라 어엿한 독립국임을 선포하였습니다. 그 때로부터 우리는 16세의 어린 소녀 유관순, 젊은 피가 끓는 윤봉길, 안중근 의사 등의 이름을 역사 속에서 익혔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소리치고 울부짖고 생명을 던지며 일제의 수탈정권에 저항한 역사를 가슴에 담았습니다.
우리는 무척산에 오르면서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모든 것을 빼앗겼던 민족이 모든 것을 가지게 되었는지, 어떻게 오늘과 같은 눈부시게 발전한 대한민국에서 살게 되었는지, 어떻게 1991년부터 다른 나라들에 한국국제협력단 (코이카, KOICA,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를 파송하여 어려운 이웃을 돕는 나라가 되었는지, 어떻게 겨우 130년의 복음역사를 가진 한국교회가 2만5천명을 선교사를 파송하여 세계선교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허리, 다리가 불편하여 산에 오를 수 없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얼마든지 생각은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서양의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어와서 한 일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복음전도에 힘을 다하였습니다. 곳곳마다, 아주 낙후된 농천 구석구석까지 다니면서 전도지를 나누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습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학교를 세웠습니다.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일에 땀을 흘렸습니다. 그 학교를 통하여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습니다. 남강 이승훈이 세우고 조만식선생이 교장을 맡기도 하였던 오산학교를 통하여 수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습니다. 병원설립이 뒤따랐습니다. 아니 사실상의 첫선교사 알렌은 의사였습니다. 오늘의 한국 최고의 병원 중에 하나인 세브란스가 초기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복음전도와 교육, 치유의 사역을 통하여 이 땅은 놀라운 은총의 반열에 서게 된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합니다.
이제 다시 생각할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향방은 내일의 세계교회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의 생각이 바로 내일 세계교회의 흐름을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통일을 위하여 마음과 뜻을 모으고, 밀려드는 쾌락주의, 동성애와 같은 세속주의의 흐름에 저항하며, 돈 때문에 마구잡이로 할랄식품단지를 세우려하는 정부를 각성시키도록 기도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엊그제 이태리를 끝으로 서구가 전부 동성애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을 보며, 우리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각이 말을, 말이 행동을, 행동이 습관을, 습관이 인격을 만듭니다. 우리는 끝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우리의 전부를 걸어야 합니다.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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