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세상, 불편한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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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702회 작성일 15-05-12 17:56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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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한 세상, 불편한 그리스도인
너무 편한 세상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든 것이 편리 합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쉽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은 ‘자동’으로 움직입니다. 밥솥에서부터 자동차까지 버턴만 누르면 해결됩니다. 인간의 관계도 온라인에서 클릭 한번으로 아주 쉽게 이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쉬워지다 보니 진지함이 별로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웠어도 어느 순간 벌컥 화를 내고 뛰쳐나가고 뒤집어 엎어버립니다. 지워버리면 그만입니다. ‘Delete“ 한 번만 누르면 아무리 열심히 쓴 글이라도 순식간에 깨끗하게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한순간입니다. 어찌 보면 이처럼 편리할 수 없습니다. 현대인은 병을 많이 앓고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별로 없는 느낌입니다. 전부 과체중이고 칼자국난 얼굴입니다. 심지어 인생의 마지막 10년은 대부분 질병을 앓다가 보낸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움직이기 불편한 노인 분들을 위한 요양병원이 거리마다 수도 없이 많이 세워져 있습니다. 성인병들은 대체로 너무 살기 좋고 먹을 것이 많아 생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인의 병을 그래서 부자 병이라고도 합니다. 너무 잘 먹고 많이 먹어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립니다. 가난한 사람처럼 조금 덜 먹기만 해도 건강에 훨씬 좋습니다. 너무 잘 먹고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되니까 몸에 기름이 차고 그래서 질병이 발생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몸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건강해 진다는 말이 됩니다.
너무 불편한 신앙생활?
요즘 교회의 수적 재정적 감소가 큰 관심사입니다. 주일학교 학생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음이 교회들의 통계에 의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급격하게 교회가 쇠퇴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출산율이 세계에서 최저수준인 것이 문제의 핵심으로 꼽힙니다. 낳지 않으니 아이들이 없고, 주일학교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입시 경쟁은 갈수록 더 치열해져서 주일이면 학교가 아닌 학원들이 아이들을 포로로 삼아버립니다. 불신가정의 아이들을 교회를 접할 기회를 아예 봉쇄해 버립니다. 학원 아니면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마다 놀러 다니는 부모도 많아졌습니다. 주일학교 출석이 들쑥날쑥하고 급속도로 줄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안락하고 수월해진 일상의 삶을 맛 본 사람들에게서 영적인 관심을 찾기는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자연히 교회도 멀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교회 생활, 신앙생활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예사로 받아들였던 일들이 여간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배라는 이름으로 시간의 자유를 빼앗습니다. 십일조와 헌금을 하라고 하고 남은 자신의 돈도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만듭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을 쉽게 할 수가 없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삶이 불편해 집니다. 얼마든지 많이 가질 수 있고, 행복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더 이상 매력이 없으며 점점 불편해지기만 합니다.
불편해야 성도다
그런데 잠깐만 생각해봐도 성도는 하나님 때문에 불편해야 정상입니다. 그래야 영적으로 건강해집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고, 정직하고 공의롭게 살아가려하면 삶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대로 말하지도 먹지도 놀지도 못하니 불편합니다. 그런데 이런 불편이 오히려 사람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나를 너무 편리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경계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근육이 불편해야 운동이 되듯, 우리 삶에서 영적 불편함을 느껴야 건강한 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에 불편을 느끼고 있는가?
혹시 부모님을 모시는 일, 돌보는 일이 불편하게 느껴지시나요? 거룩한 불편함이니 넉넉히 감당하면 좋겠습니다.
편한 세상, 불편한 그리스도인
너무 편한 세상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든 것이 편리 합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쉽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은 ‘자동’으로 움직입니다. 밥솥에서부터 자동차까지 버턴만 누르면 해결됩니다. 인간의 관계도 온라인에서 클릭 한번으로 아주 쉽게 이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쉬워지다 보니 진지함이 별로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웠어도 어느 순간 벌컥 화를 내고 뛰쳐나가고 뒤집어 엎어버립니다. 지워버리면 그만입니다. ‘Delete“ 한 번만 누르면 아무리 열심히 쓴 글이라도 순식간에 깨끗하게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한순간입니다. 어찌 보면 이처럼 편리할 수 없습니다. 현대인은 병을 많이 앓고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별로 없는 느낌입니다. 전부 과체중이고 칼자국난 얼굴입니다. 심지어 인생의 마지막 10년은 대부분 질병을 앓다가 보낸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움직이기 불편한 노인 분들을 위한 요양병원이 거리마다 수도 없이 많이 세워져 있습니다. 성인병들은 대체로 너무 살기 좋고 먹을 것이 많아 생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인의 병을 그래서 부자 병이라고도 합니다. 너무 잘 먹고 많이 먹어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립니다. 가난한 사람처럼 조금 덜 먹기만 해도 건강에 훨씬 좋습니다. 너무 잘 먹고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되니까 몸에 기름이 차고 그래서 질병이 발생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몸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건강해 진다는 말이 됩니다.
너무 불편한 신앙생활?
요즘 교회의 수적 재정적 감소가 큰 관심사입니다. 주일학교 학생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음이 교회들의 통계에 의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급격하게 교회가 쇠퇴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출산율이 세계에서 최저수준인 것이 문제의 핵심으로 꼽힙니다. 낳지 않으니 아이들이 없고, 주일학교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입시 경쟁은 갈수록 더 치열해져서 주일이면 학교가 아닌 학원들이 아이들을 포로로 삼아버립니다. 불신가정의 아이들을 교회를 접할 기회를 아예 봉쇄해 버립니다. 학원 아니면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마다 놀러 다니는 부모도 많아졌습니다. 주일학교 출석이 들쑥날쑥하고 급속도로 줄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안락하고 수월해진 일상의 삶을 맛 본 사람들에게서 영적인 관심을 찾기는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자연히 교회도 멀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교회 생활, 신앙생활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예사로 받아들였던 일들이 여간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배라는 이름으로 시간의 자유를 빼앗습니다. 십일조와 헌금을 하라고 하고 남은 자신의 돈도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만듭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을 쉽게 할 수가 없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삶이 불편해 집니다. 얼마든지 많이 가질 수 있고, 행복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더 이상 매력이 없으며 점점 불편해지기만 합니다.
불편해야 성도다
그런데 잠깐만 생각해봐도 성도는 하나님 때문에 불편해야 정상입니다. 그래야 영적으로 건강해집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고, 정직하고 공의롭게 살아가려하면 삶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대로 말하지도 먹지도 놀지도 못하니 불편합니다. 그런데 이런 불편이 오히려 사람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나를 너무 편리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경계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근육이 불편해야 운동이 되듯, 우리 삶에서 영적 불편함을 느껴야 건강한 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에 불편을 느끼고 있는가?
혹시 부모님을 모시는 일, 돌보는 일이 불편하게 느껴지시나요? 거룩한 불편함이니 넉넉히 감당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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