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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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447회 작성일 15-05-19 09:59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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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 아직 부족한 사람
우리나라 사람들이 옛날에 비하면 엄청나게 똑똑해지고 교양도 갖추고 신사적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밤이 깊어지면 길거리에서 비틀거리는 사람, 소동을 피우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닐테지만 옛날처럼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이번에 중국을 방문해 보았더니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중국의 발전상이 놀라웠습니다. 무엇보다 차로와 인도를 너무나 잘 정비해 완전히 선진국형으로 만들어 놓았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태도였습니다. 일반인들을 대할 수 없는 여행객으로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주로 만났는데 그들의 태도는 영 아니었습니다.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고, 사람들은 너무 시끄러웠습니다. 주변을 고려하는 법이 없고 정말 제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비행기 승무원조차 너무 불친절하여 나무랐더니 곁에 있던, 중국을 잘 아는 듯한 한국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 비행기 승무원들은 얼마나 콧대가 센지 모릅니다. 모든 사람을 낮추어 봅니다.” 한 때 우리나라도 승무원 되는 것이 많은 젊은이의 로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무례하고 교만하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었습니다. 국제공항에서도 영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굳이 외국인인 우리를 중국말로만 인도하려 듭니다. 마치 80년대 러시아 사람들을 보는 느낌입니다. 그 러시아가 형편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줄을 중국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한계가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소통의 사람, 불통의 사람
한마디로 인간은 개인이나 집단이나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을 극대화시켜 바라보려하지만 남들은 결코 그렇게 보아주지 않습니다. 그런 사실을 당사자들은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비극이 벌어집니다.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자기를 바로 알거나 잘 아는 것이 아닙니다. 야당은 물론이고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에 환호하던 사람들까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통대통령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박대통령은 이런 평가를 두고 매우 억울해 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 하고 교감을 나누고 있는데 불통이라고 몰아붙이니 받아들이지를 못하였습니다. 야당이나 언론에 대하여 괘씸해하는 표정이 역력하였습니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야당 대표인 문재인씨가 친정으로부터 불통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대표를 공공연하게 물러서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불통이라고 그렇게 비난하던 분이 왜 그렇게 비난받는 처지가 되어 버렸을까요?
대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전부 자신은 문제가 없고 남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자신은 소통을 잘 하고 있는데 남들이 소통에 나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데 남들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소통여부는 나의 요구를 들어주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불통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끝내 자기중심으로 살려합니다. 내가 좋으면 모든 것이 좋은 것이고 내게 좋지 않으면 그것이 무엇이라도 좋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과 복음은 정반대입니다. 예수님은 남을 위하여 자기를 내어 놓으십니다. 남이 좋으면 나도 좋은 것입니다. 오늘 나는 제대로 소통하며 살고 있는지를 알려면 남이 좋은 것을 바라는 사람인지를 보면 됩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똑똑한 사람, 아직 부족한 사람
우리나라 사람들이 옛날에 비하면 엄청나게 똑똑해지고 교양도 갖추고 신사적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밤이 깊어지면 길거리에서 비틀거리는 사람, 소동을 피우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닐테지만 옛날처럼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이번에 중국을 방문해 보았더니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중국의 발전상이 놀라웠습니다. 무엇보다 차로와 인도를 너무나 잘 정비해 완전히 선진국형으로 만들어 놓았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태도였습니다. 일반인들을 대할 수 없는 여행객으로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주로 만났는데 그들의 태도는 영 아니었습니다.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고, 사람들은 너무 시끄러웠습니다. 주변을 고려하는 법이 없고 정말 제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비행기 승무원조차 너무 불친절하여 나무랐더니 곁에 있던, 중국을 잘 아는 듯한 한국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 비행기 승무원들은 얼마나 콧대가 센지 모릅니다. 모든 사람을 낮추어 봅니다.” 한 때 우리나라도 승무원 되는 것이 많은 젊은이의 로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무례하고 교만하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었습니다. 국제공항에서도 영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굳이 외국인인 우리를 중국말로만 인도하려 듭니다. 마치 80년대 러시아 사람들을 보는 느낌입니다. 그 러시아가 형편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줄을 중국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한계가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소통의 사람, 불통의 사람
한마디로 인간은 개인이나 집단이나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을 극대화시켜 바라보려하지만 남들은 결코 그렇게 보아주지 않습니다. 그런 사실을 당사자들은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비극이 벌어집니다.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자기를 바로 알거나 잘 아는 것이 아닙니다. 야당은 물론이고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에 환호하던 사람들까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통대통령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박대통령은 이런 평가를 두고 매우 억울해 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 하고 교감을 나누고 있는데 불통이라고 몰아붙이니 받아들이지를 못하였습니다. 야당이나 언론에 대하여 괘씸해하는 표정이 역력하였습니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야당 대표인 문재인씨가 친정으로부터 불통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대표를 공공연하게 물러서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불통이라고 그렇게 비난하던 분이 왜 그렇게 비난받는 처지가 되어 버렸을까요?
대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전부 자신은 문제가 없고 남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자신은 소통을 잘 하고 있는데 남들이 소통에 나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데 남들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소통여부는 나의 요구를 들어주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불통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끝내 자기중심으로 살려합니다. 내가 좋으면 모든 것이 좋은 것이고 내게 좋지 않으면 그것이 무엇이라도 좋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과 복음은 정반대입니다. 예수님은 남을 위하여 자기를 내어 놓으십니다. 남이 좋으면 나도 좋은 것입니다. 오늘 나는 제대로 소통하며 살고 있는지를 알려면 남이 좋은 것을 바라는 사람인지를 보면 됩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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