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그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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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393회 작성일 15-07-28 09:47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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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그 행복
세 번의 만남
흔히들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세 번의 중요한 만남이 있다고 합니다. 맨 먼저는 부모와의 만남입니다.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이지만 너무나 중요합니다. 어떤 부모 밑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너무나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 잘 만나는 것, 내가 책임질 일도 아니고 내 권한도 아니어서 그저 은혜로만 이해해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배우자와의 만남이 또한 중요합니다. 어떤 남편, 어떤 아내를 만나느냐에 따라 소위 말하는 사람의 신세가 달라집니다. 옛날에는 이 만남을 처녀 총각이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였습니다. 부모들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위 연애라는 것을 매우 좋지 않고, 심지어 옳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는 만남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자신에게 있지 않아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행한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쉽게 깨지지 않았고 그런대로 유지되어 갔습니다.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만남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워합니다. 자신이 책임을 져야하다 보니 결혼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속을 태우는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 역사를 위해 더 나을지 모를 일입니다.
세 번째로 중요한 일이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선생은 많으나 스승은 없다는 소리를 하는 시대이므로 이것은 더욱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런데 스승을 만나는 일에는 선택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불분명합니다. 선생님이 학생을 알아보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이따금씩 듣습니다. 그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오늘의 나는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와 반대로 학생이 좋은 선생님을 찾아내어 스승을 삼아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역시 좋은 선생님이 내게 스승으로 다가와 준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가장 행복한 만남
한국을 떠난 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가는 24일 밤, 내게는 너무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었던 한 스승님을 만났습니다. 유학시절 만난 이 스승님은 신학교의 교수가 아니라 한 교회 목사님이셨습니다. 한국학생인 나를 자주 불러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셨고, 식사를 대접해 주고 만날 때마다 수표를 건네주었습니다. 책값이 절실한 그 때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주기도 하셨고, 무엇보다 좋은 설교, 열정적인 설교로 주일마다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난 25년간, 정확하게 말하면 캠브리지로 옮겨간 영국에서의 마지막 해를 포함하면 26년간, 제대로 연락 한 번 취하지 못하였습니다. 늘 뵙고 싶었지만 기회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가슴 한 켠에 늘 빚진 심정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나게 된 것입니다. 눈물 나게 반가웠습니다. 만 80세가 된 지금 옛날보다 얼굴이 야위었지만 마음은 여전하셨습니다. 한국학생을 만날 때마다 나에 대해 물어보곤 하셨다고 했습니다. 날 더러 ‘Big man’이라고 한 사람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목사님은 여전히 가슴에 복음의 열정으로 가득하였고, 쇠퇴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도 영국교회에 복음적인 설교자들이 남아있음에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수년전 새로 개척된 교회지만 복음에 충실한 설교자가 있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음을 자랑하셨습니다. 복음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생명을 넘치게 하는 것을 보고 듣습니다. 평생에 복음을 외치다 끝까지 복음에 젖어 사시는 스승을 만날 수 있음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젖어 사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찾아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세상적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으로 곧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영국 브리스톨에서 평안을 전합니다.
만남, 그 행복
세 번의 만남
흔히들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세 번의 중요한 만남이 있다고 합니다. 맨 먼저는 부모와의 만남입니다.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이지만 너무나 중요합니다. 어떤 부모 밑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너무나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 잘 만나는 것, 내가 책임질 일도 아니고 내 권한도 아니어서 그저 은혜로만 이해해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배우자와의 만남이 또한 중요합니다. 어떤 남편, 어떤 아내를 만나느냐에 따라 소위 말하는 사람의 신세가 달라집니다. 옛날에는 이 만남을 처녀 총각이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였습니다. 부모들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위 연애라는 것을 매우 좋지 않고, 심지어 옳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는 만남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자신에게 있지 않아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행한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쉽게 깨지지 않았고 그런대로 유지되어 갔습니다.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만남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워합니다. 자신이 책임을 져야하다 보니 결혼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속을 태우는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 역사를 위해 더 나을지 모를 일입니다.
세 번째로 중요한 일이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선생은 많으나 스승은 없다는 소리를 하는 시대이므로 이것은 더욱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런데 스승을 만나는 일에는 선택의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불분명합니다. 선생님이 학생을 알아보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이따금씩 듣습니다. 그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오늘의 나는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와 반대로 학생이 좋은 선생님을 찾아내어 스승을 삼아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역시 좋은 선생님이 내게 스승으로 다가와 준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가장 행복한 만남
한국을 떠난 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가는 24일 밤, 내게는 너무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었던 한 스승님을 만났습니다. 유학시절 만난 이 스승님은 신학교의 교수가 아니라 한 교회 목사님이셨습니다. 한국학생인 나를 자주 불러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셨고, 식사를 대접해 주고 만날 때마다 수표를 건네주었습니다. 책값이 절실한 그 때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주기도 하셨고, 무엇보다 좋은 설교, 열정적인 설교로 주일마다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난 25년간, 정확하게 말하면 캠브리지로 옮겨간 영국에서의 마지막 해를 포함하면 26년간, 제대로 연락 한 번 취하지 못하였습니다. 늘 뵙고 싶었지만 기회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가슴 한 켠에 늘 빚진 심정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나게 된 것입니다. 눈물 나게 반가웠습니다. 만 80세가 된 지금 옛날보다 얼굴이 야위었지만 마음은 여전하셨습니다. 한국학생을 만날 때마다 나에 대해 물어보곤 하셨다고 했습니다. 날 더러 ‘Big man’이라고 한 사람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목사님은 여전히 가슴에 복음의 열정으로 가득하였고, 쇠퇴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도 영국교회에 복음적인 설교자들이 남아있음에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수년전 새로 개척된 교회지만 복음에 충실한 설교자가 있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음을 자랑하셨습니다. 복음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생명을 넘치게 하는 것을 보고 듣습니다. 평생에 복음을 외치다 끝까지 복음에 젖어 사시는 스승을 만날 수 있음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젖어 사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찾아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세상적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으로 곧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영국 브리스톨에서 평안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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