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을 담보할 방법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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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391회 작성일 14-06-03 11:06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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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을 담보할 방법은 없는가?
안전하지 못한 사회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는 단연코 ‘안전’입니다. 위험한 일이 발생할 개연성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곳곳에서 실제로 각종의 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꽃다운 아이들의 죽음을 아쉬워하여 팽목 항에서는 울음이 그치지 않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잠수사의 죽음을 다시 보게 되니 어이가 없습니다. 그렇게 안전을 강조했는데 어떻게 그 참사의 현장에서 다시 죽는 일이 발생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까 안전이 주의한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은 주의한다고 멈추는 그런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안전한 사회는 오랜 세월이 걸려야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너무 빠른 속도로 오직 이익을 남기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 가다보니 안전을 위해 투자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고 근년 들어 안전장치를 만드느라고 애를 썼지만 그걸 사용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안전의 형식은 갖추었는데, 실제적으로는 아직 안전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5층에도 완강기라는 것이 달려있지만 아무도 사용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불이 난다고 해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비상대피도구로 만들어 놓았지만 그걸 타고 불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매뉴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 갖추려하지만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도 없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해 본 적도 없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안전으로 가는 길
이런 현실은 빠르고 바르게 극복해야 합니다. 국가적으로 위기가 발생할 때 누가 어떻게 그 위기에 대처할 것인지가 불명확하다는 것이 세월호가 안겨준 교훈이어서 지금 대통령은 ‘국가 안전처’ 구성을 제안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고 있습니다. 60년 된 해경을 폐지하는 극약 처방을 단행하려 합니다. 정부 부처 중 가장 중심이 되고 권력을 가진 곳으로 분류되는 안전행정부를 조각내 버리려 하기도 하였습니다.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내각 전체를 다 바꾸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어 무엇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공무원 사회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국가를 아예 개조하는 수준에서 국가경영에 임하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입장으로 보입니다만 얼마나 국회의 협조가 있을지, 미심 적어집니다.
국가 공조직의 능력에 신뢰가 있어야 국가개조도 가능할 것인데, 세월호 참사 현장의 중심인물로 떠오르는 유병언의 도피행각은 한국 수사기관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할 것으로 만들어 그렇잖아도 어려운 정부의 고통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소위 종교인이라는 자가 수사를 피해 도망 다니는 행태를 보인다는 사실은 자신의 정체성을 깡그리 부인하는 행동으로 전혀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이 종교인입네 하고 있으니 사회는 불신의 늪으로 자꾸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불신이야말로 가장 사회를 불안전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극단적인 불신 속에 빠져있으니 곳곳이 안전하지 못한 곳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결국 믿음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안전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선거에 나선 후보자의 말, 곧 잡을 것이라는 검찰의 말, 단원고 아이들의 죽음을 추모한다는 추모집회 주최자의 말을 믿을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이지만, 어째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통제하지 못한 권력에의 탐욕, 명예에 대한 탐욕, 더 많이 갖지 못한 돈에 대한 탐욕이 모두에게서 묻어나고 있으니 안전과는 아직 거리가 멉니다. 두 벌 옷이면 나눠주라는 주님의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모든 사람이 모든 경우에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마음을 품을 때 비로소 평안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날을 빨리 보고 싶습니다.
안전을 담보할 방법은 없는가?
안전하지 못한 사회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는 단연코 ‘안전’입니다. 위험한 일이 발생할 개연성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곳곳에서 실제로 각종의 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꽃다운 아이들의 죽음을 아쉬워하여 팽목 항에서는 울음이 그치지 않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잠수사의 죽음을 다시 보게 되니 어이가 없습니다. 그렇게 안전을 강조했는데 어떻게 그 참사의 현장에서 다시 죽는 일이 발생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까 안전이 주의한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은 주의한다고 멈추는 그런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안전한 사회는 오랜 세월이 걸려야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너무 빠른 속도로 오직 이익을 남기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 가다보니 안전을 위해 투자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고 근년 들어 안전장치를 만드느라고 애를 썼지만 그걸 사용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안전의 형식은 갖추었는데, 실제적으로는 아직 안전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5층에도 완강기라는 것이 달려있지만 아무도 사용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불이 난다고 해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비상대피도구로 만들어 놓았지만 그걸 타고 불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매뉴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 갖추려하지만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도 없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해 본 적도 없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안전으로 가는 길
이런 현실은 빠르고 바르게 극복해야 합니다. 국가적으로 위기가 발생할 때 누가 어떻게 그 위기에 대처할 것인지가 불명확하다는 것이 세월호가 안겨준 교훈이어서 지금 대통령은 ‘국가 안전처’ 구성을 제안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고 있습니다. 60년 된 해경을 폐지하는 극약 처방을 단행하려 합니다. 정부 부처 중 가장 중심이 되고 권력을 가진 곳으로 분류되는 안전행정부를 조각내 버리려 하기도 하였습니다.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내각 전체를 다 바꾸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어 무엇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공무원 사회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국가를 아예 개조하는 수준에서 국가경영에 임하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입장으로 보입니다만 얼마나 국회의 협조가 있을지, 미심 적어집니다.
국가 공조직의 능력에 신뢰가 있어야 국가개조도 가능할 것인데, 세월호 참사 현장의 중심인물로 떠오르는 유병언의 도피행각은 한국 수사기관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할 것으로 만들어 그렇잖아도 어려운 정부의 고통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소위 종교인이라는 자가 수사를 피해 도망 다니는 행태를 보인다는 사실은 자신의 정체성을 깡그리 부인하는 행동으로 전혀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이 종교인입네 하고 있으니 사회는 불신의 늪으로 자꾸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불신이야말로 가장 사회를 불안전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극단적인 불신 속에 빠져있으니 곳곳이 안전하지 못한 곳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결국 믿음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안전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선거에 나선 후보자의 말, 곧 잡을 것이라는 검찰의 말, 단원고 아이들의 죽음을 추모한다는 추모집회 주최자의 말을 믿을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이지만, 어째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통제하지 못한 권력에의 탐욕, 명예에 대한 탐욕, 더 많이 갖지 못한 돈에 대한 탐욕이 모두에게서 묻어나고 있으니 안전과는 아직 거리가 멉니다. 두 벌 옷이면 나눠주라는 주님의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모든 사람이 모든 경우에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마음을 품을 때 비로소 평안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날을 빨리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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