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떠나는 사람”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602회 작성일 13-11-16 15:31본문
11/17
“아름답게 떠나는 사람”
그라운드의 전도사 이영표 선수
그라운드의 전도사 이영표. 이영무 선수를 필두로 그라운드에서 그리스도인임을 분명히 하는 젊은 친구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진입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이루면서 수많은 이름들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김태영 송종국 안정환 유상철 이운재 차두리 이천수...그 뒤를 따르는 박주영, 그들의 기도 세레모니.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선수가 바로 이영표 선수입니다. 그는 참으로 믿음직스러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바로 그 이영표 선수(36)가 28년간 밟은 그라운드에서 떠났습니다.
이영표는 지난 15일 금요일 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스위스의 대표팀 친선경기에서 전반전을 마친 하프타임 때 캐주얼 차림으로 운동장에 등장했습니다. 커다란 걸개가 그를 반겼습니다. 그를 향한 팬들의 외침은 “최고의 수비수”였습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안정된 수비수로서 각광을 받았습니다. 그가 있으면 항상 듬직했습니다. 정몽규(51) 대한축구협회장은 그에게 공로패와 감사패를 수여했습니다. 이영표 선수는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며 손을 흔들면서 축구팬들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관중들은 작별의 메시지를 담은 종이비행기를 이영표에게 날리며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습니다. 그는 종이비행기를 한 두 개 주워가며 환호에 답했습니다. 이영표가 인사를 마칠 때쯤 관중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습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영표의 축구인생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시작해 올해로 28년째.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핵심 수비수로 성장했습니다. 2003년에는 히딩크 감독의 제안으로 박지성(32)과 함께 네덜란드 프로축구 PSV 에인트호벤으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를 밟았고 이후 영국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 등에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가 남긴 말은 간단했습니다. “나에게 긴 시간 동안 보낸 응원을 후배들에게 돌려주세요”, “한국축구와 K리그를 사랑해 주세요.” 축구와 선수들에 대한 사랑만 남기고 떠났습니다. 아쉽기만 하고 군더더기 하나 없는, ‘최고 축구 선수’의 너무나 멋진 퇴장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을 보낸 기쁨이 막 밀려왔습니다.
목회자의 아이돌 조용기 목사
조용기 목사는 7,80년대 공부하던 모든 신학생이 바라보고 꿈꾸던 사람이었습니다. 신학생들은 바람이 새는 듯한 그의 목소리를 곧잘 흉내 내기도 하였습니다. 요즘 소위 뜨는 부흥사 한사람은 조용기 목사 흉내를 잘 내는 바람에 그의 눈에 띄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천막을 치고 개척교회를 시작하였는데 수십만 명이 모이는 세계 최대의 교회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지교회를 세우고, 세계를 돌면서 집회를 인도하고, 한세대학교를 설립하고 국민일보를 창간하며 대형빌딩을 소유하는 등 그 어느 목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수없는 일들을 이루어내었습니다. 지금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오산리 기도원에서는 끊임없이 각종의 집회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닙니다. 칠십을 훨씬 넘긴 나이에 제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깨끗하게 은퇴까지 했으니 성공적으로 목회를 마친 ‘목회의 최고 선수’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겉보기와 달랐습니다. 그의 목회 말년에 끊임없이 이말 저말이 들리고, 아내와 자녀문제로 교회는 은퇴 후에 본격적으로 시끄러워졌습니다. 세계최대 교회는 돈도 많았고, 그 돈을 여러 가지 사업에 쏟아놓고 그 소유권을 조목사가 가족들이 차지하는 바람에 소용돌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4일에는 이미 재판중인 사건 외에 또다른 의혹들이 제기되었고 다시 법원에 고소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그라운드 전체가 뜨거워지고 아쉬워하는 이영표 축구 선수의 은퇴식과, 갈수록 매스컴과 법정이 뜨거워지는 ‘최고목사’의 은퇴 후 모습. 달라도 너무 달라 수치심이 밀려옵니다. 우리 모두 감사하며 아름답게 떠나는 법을 익혀야겠습니다.
“아름답게 떠나는 사람”
그라운드의 전도사 이영표 선수
그라운드의 전도사 이영표. 이영무 선수를 필두로 그라운드에서 그리스도인임을 분명히 하는 젊은 친구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진입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이루면서 수많은 이름들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김태영 송종국 안정환 유상철 이운재 차두리 이천수...그 뒤를 따르는 박주영, 그들의 기도 세레모니.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선수가 바로 이영표 선수입니다. 그는 참으로 믿음직스러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바로 그 이영표 선수(36)가 28년간 밟은 그라운드에서 떠났습니다.
이영표는 지난 15일 금요일 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스위스의 대표팀 친선경기에서 전반전을 마친 하프타임 때 캐주얼 차림으로 운동장에 등장했습니다. 커다란 걸개가 그를 반겼습니다. 그를 향한 팬들의 외침은 “최고의 수비수”였습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안정된 수비수로서 각광을 받았습니다. 그가 있으면 항상 듬직했습니다. 정몽규(51) 대한축구협회장은 그에게 공로패와 감사패를 수여했습니다. 이영표 선수는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며 손을 흔들면서 축구팬들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관중들은 작별의 메시지를 담은 종이비행기를 이영표에게 날리며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습니다. 그는 종이비행기를 한 두 개 주워가며 환호에 답했습니다. 이영표가 인사를 마칠 때쯤 관중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습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영표의 축구인생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시작해 올해로 28년째.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핵심 수비수로 성장했습니다. 2003년에는 히딩크 감독의 제안으로 박지성(32)과 함께 네덜란드 프로축구 PSV 에인트호벤으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를 밟았고 이후 영국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 등에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가 남긴 말은 간단했습니다. “나에게 긴 시간 동안 보낸 응원을 후배들에게 돌려주세요”, “한국축구와 K리그를 사랑해 주세요.” 축구와 선수들에 대한 사랑만 남기고 떠났습니다. 아쉽기만 하고 군더더기 하나 없는, ‘최고 축구 선수’의 너무나 멋진 퇴장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을 보낸 기쁨이 막 밀려왔습니다.
목회자의 아이돌 조용기 목사
조용기 목사는 7,80년대 공부하던 모든 신학생이 바라보고 꿈꾸던 사람이었습니다. 신학생들은 바람이 새는 듯한 그의 목소리를 곧잘 흉내 내기도 하였습니다. 요즘 소위 뜨는 부흥사 한사람은 조용기 목사 흉내를 잘 내는 바람에 그의 눈에 띄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천막을 치고 개척교회를 시작하였는데 수십만 명이 모이는 세계 최대의 교회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지교회를 세우고, 세계를 돌면서 집회를 인도하고, 한세대학교를 설립하고 국민일보를 창간하며 대형빌딩을 소유하는 등 그 어느 목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수없는 일들을 이루어내었습니다. 지금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오산리 기도원에서는 끊임없이 각종의 집회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닙니다. 칠십을 훨씬 넘긴 나이에 제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깨끗하게 은퇴까지 했으니 성공적으로 목회를 마친 ‘목회의 최고 선수’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겉보기와 달랐습니다. 그의 목회 말년에 끊임없이 이말 저말이 들리고, 아내와 자녀문제로 교회는 은퇴 후에 본격적으로 시끄러워졌습니다. 세계최대 교회는 돈도 많았고, 그 돈을 여러 가지 사업에 쏟아놓고 그 소유권을 조목사가 가족들이 차지하는 바람에 소용돌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4일에는 이미 재판중인 사건 외에 또다른 의혹들이 제기되었고 다시 법원에 고소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그라운드 전체가 뜨거워지고 아쉬워하는 이영표 축구 선수의 은퇴식과, 갈수록 매스컴과 법정이 뜨거워지는 ‘최고목사’의 은퇴 후 모습. 달라도 너무 달라 수치심이 밀려옵니다. 우리 모두 감사하며 아름답게 떠나는 법을 익혀야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