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열정, 그리고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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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425회 작성일 12-12-22 18:26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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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열정, 그리고 도움
사랑할 곳을 찾아
지난 해 설립 60년의 역사를 맞은 우리교회는 제법 긴 역사를 가진 공동체답게 주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꿈을 다시 일구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교회는 이미 1990년대에 필리핀에 학교를 세우는 일에 동참한 바 있습니다. 1987년에 필리핀으로 파송받은 남후수 이성희 선교사 부부가 얼마 후 그곳에 성경을 가르치는 대학과정의 학교를 세웠습니다. 지도자를 키워야 교회가 제대로 자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Cebu Bible College를 설립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네 사람들은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도 세워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초등학교를 시작한 것이 이제는 아예 신학교를 몰아내고(!) 초중고등학교 전과정 교육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학교 건물의 건축을 위하여 우리는 당시 돈으로 6천만원을 지원하였고, 목수 일을 하시는 집사님들을 한달이상 필리핀으로 파송하여 건물 짓는 일을 직접 돕기도 하였습니다.
열정을 키우며
그런 후 우리는 오랫동안 더 이상 선교사역에 대한 꿈을 키우지 못하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재개발 문제가 불거지면서 교회당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되었고, 그 문제에 대한 내부 의견 조율의 실패로 여러 가지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생각도 못하는 시간을 수년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60주년을 맞으면서 우리는 다시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였고, 그 기념으로 여러 가지 일을 계획하는 중에 태국으로 파송된, 우리교회 장로로 섬기던 최성권선교사님과 뜻이 맞아 태국 북부 치앙다오군의 산지에 살고 있는 다아랑 족을 위한 교회당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산지인들에게 큰 기쁨을 줄 수 있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제법 그럴듯한 예배당이 건축되었고 50여명이 모이는 교회로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뿍’이라 이름하는 전도사를 세워 교회를 섬기게 하였고 신학공부도 계속 시켜주고 있습니다. 교회에 속한 가정들을 위하여 돼지새끼를 분양하여 나눠 주기도 하였고, 우물도 한 곳 파도록 후원하였습니다. 그들은 아직 우리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모릅니다. 태국어를 아는 사람들도 많지 못하니 영어는 아예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도움을 손을 편다
그런데 그동안 진정으로 이들을 장래를 위하여 애를 쓰는 분이 계셨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인 선교사 한 분이 이들 가운데 원하는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가 있는 마을에서 기숙사를 운영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 선교사님은 무슨 마음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보다 더 어려운 지역인 미얀마에서 사역하기를 원하여 태국을 떠난다고 했습니다. 자연히 기숙사를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마을로 옮겨가야 하고 공부하기에 매우 불편한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최선교사님은 다시 용기를 내어 우리교회 문을 두드리며 기숙사를 지어달라는 요구를 해 왔습니다. 기왕에 시작한 일의 끝을 보아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집도 짓고 매월 100만원 정도 드는 운영비도 도와주었으면 하는 눈치였습니다. 물론 지금의 우리가 모두 들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 주저했지만 마침내 지난 주일 우리는 당회와 제직회를 열어 3천만원을 들여 기숙사를 짓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호적도 없는 그들 다아랑족의 아이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역사에 당당히 이름을 남길 날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며 함께 하려합니다. 시온성을 향해 달리는 우리 성도들의 뜨거운 마음, 희생적인 사랑을 기대합니다.
사랑, 열정, 그리고 도움
사랑할 곳을 찾아
지난 해 설립 60년의 역사를 맞은 우리교회는 제법 긴 역사를 가진 공동체답게 주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꿈을 다시 일구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교회는 이미 1990년대에 필리핀에 학교를 세우는 일에 동참한 바 있습니다. 1987년에 필리핀으로 파송받은 남후수 이성희 선교사 부부가 얼마 후 그곳에 성경을 가르치는 대학과정의 학교를 세웠습니다. 지도자를 키워야 교회가 제대로 자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Cebu Bible College를 설립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네 사람들은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도 세워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초등학교를 시작한 것이 이제는 아예 신학교를 몰아내고(!) 초중고등학교 전과정 교육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학교 건물의 건축을 위하여 우리는 당시 돈으로 6천만원을 지원하였고, 목수 일을 하시는 집사님들을 한달이상 필리핀으로 파송하여 건물 짓는 일을 직접 돕기도 하였습니다.
열정을 키우며
그런 후 우리는 오랫동안 더 이상 선교사역에 대한 꿈을 키우지 못하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재개발 문제가 불거지면서 교회당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되었고, 그 문제에 대한 내부 의견 조율의 실패로 여러 가지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생각도 못하는 시간을 수년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60주년을 맞으면서 우리는 다시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였고, 그 기념으로 여러 가지 일을 계획하는 중에 태국으로 파송된, 우리교회 장로로 섬기던 최성권선교사님과 뜻이 맞아 태국 북부 치앙다오군의 산지에 살고 있는 다아랑 족을 위한 교회당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산지인들에게 큰 기쁨을 줄 수 있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제법 그럴듯한 예배당이 건축되었고 50여명이 모이는 교회로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뿍’이라 이름하는 전도사를 세워 교회를 섬기게 하였고 신학공부도 계속 시켜주고 있습니다. 교회에 속한 가정들을 위하여 돼지새끼를 분양하여 나눠 주기도 하였고, 우물도 한 곳 파도록 후원하였습니다. 그들은 아직 우리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모릅니다. 태국어를 아는 사람들도 많지 못하니 영어는 아예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도움을 손을 편다
그런데 그동안 진정으로 이들을 장래를 위하여 애를 쓰는 분이 계셨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인 선교사 한 분이 이들 가운데 원하는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가 있는 마을에서 기숙사를 운영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 선교사님은 무슨 마음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보다 더 어려운 지역인 미얀마에서 사역하기를 원하여 태국을 떠난다고 했습니다. 자연히 기숙사를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마을로 옮겨가야 하고 공부하기에 매우 불편한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최선교사님은 다시 용기를 내어 우리교회 문을 두드리며 기숙사를 지어달라는 요구를 해 왔습니다. 기왕에 시작한 일의 끝을 보아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집도 짓고 매월 100만원 정도 드는 운영비도 도와주었으면 하는 눈치였습니다. 물론 지금의 우리가 모두 들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 주저했지만 마침내 지난 주일 우리는 당회와 제직회를 열어 3천만원을 들여 기숙사를 짓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호적도 없는 그들 다아랑족의 아이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역사에 당당히 이름을 남길 날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며 함께 하려합니다. 시온성을 향해 달리는 우리 성도들의 뜨거운 마음, 희생적인 사랑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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