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독일에게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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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298회 작성일 12-09-01 18:56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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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독일에게 배워야 한다
비슷한 두 나라
독일과 일본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다. 역사에 두고두고 속죄해야 하는 신세라는 점에서는 꼭 같다. 그 뿐 아니다. 패전국으로서 놀랍게도 세계 최고의 기술대국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둘은 닮았다. 유럽이 전부 흔들려도 독일은 끄떡없다. 유럽 국가에 문제가 생기면 모두 독일을 쳐다본다. 일본의 국력도 중국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큰소리 쳤다. 최근에 불어 닥친 세계경제위기에 국제사회는 위안화가 아니라 엔화를 사들였다. 일본이 10년 연속 경제불황이라고 해도 돈이 일본으로 쏠린다는 것은 일본의 역량이 어떠한지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을 쳐다볼 생각이 없다. 일본을 좋아하는 나라들이 별로 없다. 요즘 우리나라와 일본이 벌이고 있는 신경전은 독일이 일본의 자리에 있었으면 벌써 종결되었을 일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화가 난다. 일본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왜 독일이 할 수 있는 일을 일본은 하지 못하는가?
1967년 4월 25일 아데나워의 관(棺)을 실은 서독 고속전함 콘도트호가 프랑스·영국·네덜란드 군함의 호위를 받으며 라인강 강줄기를 따라 아데나워가 살던 륀도르프 마을을 향했던 사실은 역사적으로 너무 유명하다. 아데나워는 2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戰犯)국가 독일을 이은 서독의 초대 총리였다. 그런데 그의 장례행렬은 마치 개선행진 같았다는 것이다. 장례미사에는 드골 프랑스 대통령,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 벤구리온 전 총리가 참석했다. 독일 침략의 최대 피해국과 최대 피해 민족의 대표가 독일 총리의 장례에 참석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혀 다른 두 나라
아데나워가 1951년 4월 11일 총리로서 처음 파리를 방문했을 때 프랑스 측에선 단 한 명의 장관도 마중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가 아데나워로 인하여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고는 서독이 유럽의 일원(一員)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을 수 없다는 걸 절실히 느낀 아데나워는 총리 재임 14년 동안 파리를 스물여섯 번 방문했다고 한다. 1958년 콜롱베 시골 별장으로 드골 대통령을 찾아간 이래 열다섯 차례 100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40여 회에 걸쳐 편지를 교환하며 이 숙제를 푸는 일에 매달렸다.
1970년 12월 8일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는 \"오늘의 세계를 기록할 한 장의 사진\"이란 제목 아래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유대인 희생자 추념비(追念碑)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실었다. 1985년 5월 8일 서독 대통령 바이츠제커는 \"독일 항복 40주년 기념\" 연설에서 \"젊은 세대가 정치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개인적으로야 40년 전 일에 대해 무슨 책임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 역시 독일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젊은 세대가 그 책임을 망각(忘却)하지 않도록 우리가 도와야 합니다.\"
역사를 뒤집고 있는 노다 일본 총리가 1957년생,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이 1956년생, 아베 전 총리가 1954년생. 전부 전쟁 후세대이다. 침략의 역사를 모르는 세대라 무지를 핑계로 역사적 죄악을 무조건 부정하고 있다. 독일의 아데나워, 빌리 브란트, 바이츠제커 같은 제대로 된 인물, 회개와 역사적 책임을 가르칠 올바른 선생이 없는 것이 일본의 불편한 진실이다. 아무도 그들을 돌이키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나마 해마다 한국을 찾아 울며 회개하는 소수의 일본 지성인, 일본 기독교인들이 일본 역사의 선생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할 뿐이다.
일본은 독일에게 배워야 한다
비슷한 두 나라
독일과 일본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다. 역사에 두고두고 속죄해야 하는 신세라는 점에서는 꼭 같다. 그 뿐 아니다. 패전국으로서 놀랍게도 세계 최고의 기술대국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둘은 닮았다. 유럽이 전부 흔들려도 독일은 끄떡없다. 유럽 국가에 문제가 생기면 모두 독일을 쳐다본다. 일본의 국력도 중국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큰소리 쳤다. 최근에 불어 닥친 세계경제위기에 국제사회는 위안화가 아니라 엔화를 사들였다. 일본이 10년 연속 경제불황이라고 해도 돈이 일본으로 쏠린다는 것은 일본의 역량이 어떠한지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을 쳐다볼 생각이 없다. 일본을 좋아하는 나라들이 별로 없다. 요즘 우리나라와 일본이 벌이고 있는 신경전은 독일이 일본의 자리에 있었으면 벌써 종결되었을 일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화가 난다. 일본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왜 독일이 할 수 있는 일을 일본은 하지 못하는가?
1967년 4월 25일 아데나워의 관(棺)을 실은 서독 고속전함 콘도트호가 프랑스·영국·네덜란드 군함의 호위를 받으며 라인강 강줄기를 따라 아데나워가 살던 륀도르프 마을을 향했던 사실은 역사적으로 너무 유명하다. 아데나워는 2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戰犯)국가 독일을 이은 서독의 초대 총리였다. 그런데 그의 장례행렬은 마치 개선행진 같았다는 것이다. 장례미사에는 드골 프랑스 대통령,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 벤구리온 전 총리가 참석했다. 독일 침략의 최대 피해국과 최대 피해 민족의 대표가 독일 총리의 장례에 참석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혀 다른 두 나라
아데나워가 1951년 4월 11일 총리로서 처음 파리를 방문했을 때 프랑스 측에선 단 한 명의 장관도 마중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가 아데나워로 인하여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고는 서독이 유럽의 일원(一員)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을 수 없다는 걸 절실히 느낀 아데나워는 총리 재임 14년 동안 파리를 스물여섯 번 방문했다고 한다. 1958년 콜롱베 시골 별장으로 드골 대통령을 찾아간 이래 열다섯 차례 100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40여 회에 걸쳐 편지를 교환하며 이 숙제를 푸는 일에 매달렸다.
1970년 12월 8일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는 \"오늘의 세계를 기록할 한 장의 사진\"이란 제목 아래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유대인 희생자 추념비(追念碑)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실었다. 1985년 5월 8일 서독 대통령 바이츠제커는 \"독일 항복 40주년 기념\" 연설에서 \"젊은 세대가 정치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개인적으로야 40년 전 일에 대해 무슨 책임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 역시 독일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젊은 세대가 그 책임을 망각(忘却)하지 않도록 우리가 도와야 합니다.\"
역사를 뒤집고 있는 노다 일본 총리가 1957년생,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이 1956년생, 아베 전 총리가 1954년생. 전부 전쟁 후세대이다. 침략의 역사를 모르는 세대라 무지를 핑계로 역사적 죄악을 무조건 부정하고 있다. 독일의 아데나워, 빌리 브란트, 바이츠제커 같은 제대로 된 인물, 회개와 역사적 책임을 가르칠 올바른 선생이 없는 것이 일본의 불편한 진실이다. 아무도 그들을 돌이키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나마 해마다 한국을 찾아 울며 회개하는 소수의 일본 지성인, 일본 기독교인들이 일본 역사의 선생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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