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사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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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426회 작성일 12-10-20 16:41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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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사는 지혜
악처보다 무서운 것
어느 목사님이 신문 칼럼을 통해 이런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어느 날 육십이 갓 넘은 집사님이 노크를 하고 목사님을 만나러 들어왔습니다. 앉자마자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목사님, 여자란 묘해요.’ 갑자기 던지는 말에 목사님은 어이가 없어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음 말을 이렇게 이어갔습니다.
“이 세상에 나의 아내처럼 악한 여자는 없었을 것입니다. 지긋지긋했습니다. 참고 또 참고 아무리 참아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헤어진 지 3년, 이제는 아무리 지긋지긋한 아내라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혼자 산다는 것은 악처보다도 더 무서운 외로움과 함께 사는 것과 같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를 것입니다.”
그 말을 남기고 집사님은 방을 나갔습니다. 아내와 헤어진 그 집사님은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을 하소연하기 위해 목사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듣기도 있기만 해도 쓸쓸한 이야기입니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여자가 묘한 것일까요? 남자는 그렇지 않을까요? 제 장인 어른은 60의 중반도 넘기기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제가 결혼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얼마동안 지병으로 고생하시더니 훌쩍 떠나버리셨습니다. 당신의 딸을 잘 돌보아 주라고 부탁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한데 그렇게 가신 지가 벌써 30년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장인이 살아계실 때 몸이 좋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게 되니까 장모님은 은근히 그냥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이 병마에 시달리지 않고 그냥 주님께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장인이 돌아가신 다음, 장모님의 생각이 달라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벽을 보고 누워있어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장모님이 가족들에게 밝힌 속마음이었습니다. 아무리 불편해도 사랑하는 사람은 곁에 있는 것이 좋다는 말입니다. 물론 아무리 효자라고 해도 부모님이 병이 길어지면 일시적으로 인내가 마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은 곁에 두고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래야 마음이 놓이고 좋습니다.
임마누엘의 축복
가을이 깊어지면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합니다. 허전한 마음, 외로운 마음을 달래고 싶어 그러는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가을이면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합니다. 혼자 할 수 없어 미루어지고, 형편이 어려워하지 못하고, 배우자를 구하지 못해 마음뿐인 청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사람들이 얼마나 서로 만족하고 사는 것일까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독처 하는 것이 좋지 못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홀로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악마 같은 여인, 포악스러운 남자... 바로 그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배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사람과 헤어져도 되는가. 그런데 헤어지고 나면 그 악처보다 더 악한 ‘나 홀로’라는 악처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누군가는 외출했다 돌아와 캄캄한 방에 불을 켤 때 바퀴벌레들이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것을 보고 ‘운이 좋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바퀴벌레라도 나를 맞아 주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이 가을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임마누엘 주님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영원히 함께 하시니까요!
가을을 사는 지혜
악처보다 무서운 것
어느 목사님이 신문 칼럼을 통해 이런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어느 날 육십이 갓 넘은 집사님이 노크를 하고 목사님을 만나러 들어왔습니다. 앉자마자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목사님, 여자란 묘해요.’ 갑자기 던지는 말에 목사님은 어이가 없어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음 말을 이렇게 이어갔습니다.
“이 세상에 나의 아내처럼 악한 여자는 없었을 것입니다. 지긋지긋했습니다. 참고 또 참고 아무리 참아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헤어진 지 3년, 이제는 아무리 지긋지긋한 아내라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혼자 산다는 것은 악처보다도 더 무서운 외로움과 함께 사는 것과 같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를 것입니다.”
그 말을 남기고 집사님은 방을 나갔습니다. 아내와 헤어진 그 집사님은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을 하소연하기 위해 목사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듣기도 있기만 해도 쓸쓸한 이야기입니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여자가 묘한 것일까요? 남자는 그렇지 않을까요? 제 장인 어른은 60의 중반도 넘기기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제가 결혼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얼마동안 지병으로 고생하시더니 훌쩍 떠나버리셨습니다. 당신의 딸을 잘 돌보아 주라고 부탁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한데 그렇게 가신 지가 벌써 30년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장인이 살아계실 때 몸이 좋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게 되니까 장모님은 은근히 그냥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이 병마에 시달리지 않고 그냥 주님께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장인이 돌아가신 다음, 장모님의 생각이 달라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벽을 보고 누워있어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장모님이 가족들에게 밝힌 속마음이었습니다. 아무리 불편해도 사랑하는 사람은 곁에 있는 것이 좋다는 말입니다. 물론 아무리 효자라고 해도 부모님이 병이 길어지면 일시적으로 인내가 마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은 곁에 두고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래야 마음이 놓이고 좋습니다.
임마누엘의 축복
가을이 깊어지면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합니다. 허전한 마음, 외로운 마음을 달래고 싶어 그러는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가을이면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합니다. 혼자 할 수 없어 미루어지고, 형편이 어려워하지 못하고, 배우자를 구하지 못해 마음뿐인 청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사람들이 얼마나 서로 만족하고 사는 것일까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독처 하는 것이 좋지 못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홀로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악마 같은 여인, 포악스러운 남자... 바로 그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배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사람과 헤어져도 되는가. 그런데 헤어지고 나면 그 악처보다 더 악한 ‘나 홀로’라는 악처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누군가는 외출했다 돌아와 캄캄한 방에 불을 켤 때 바퀴벌레들이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것을 보고 ‘운이 좋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바퀴벌레라도 나를 맞아 주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이 가을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임마누엘 주님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영원히 함께 하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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