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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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173회 작성일 12-03-10 17:41본문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필요하다!
갈등 충만의 사회
지금 우리 사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것이 아니라 갈등으로 충만합니다. 선거철이 되면서 이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습니다. 이미 2007년도에 노무현 정부에서 결정한 한미 FTA협정이 현 정부 들어 마무리 되었고 3월 15일에는 발효가 됩니다. 그런데도 다시 이 문제를 들고 나서서 갈들을 유발하는 사람들이 정치권의 선두에 서 있습니다. 지난 정부의 총리로서 협정 찬성을 강조하고 선전하던 사람이 갑자기 반대파가 되어 세상을 소란하게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제주도 해군기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이 결정한 일을 자신들이 앞장서서 반대합니다.
이 희한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억지로 반대를 하다 보니 기상천외한 말도 튀어나와 관련자들을 분노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해적기지 건설반대”라고 소리를 지른 젊은 여성의 생트집이 해군참모총장, 전직 해군제독의 마음을 긁어놓았습니다. 고소장이 날아들고, 주먹 쥔 제독의 손이 신문 1면을 장식합니다. 학교 가던 아들이 “아버지 나는 해적의 아들입니까?”라고 엉뚱한 질문을 던졌으니 그 아버지의 마음이 오죽할지 짐작이 됩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갈등이 더 커져갈 것 같아 기분이 좋지 못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일에 관하여 모두가 동일하게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렵습니다. 각기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전원 찬성하는 경우는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성숙한 사람이라면 생각의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를 편가름하는 일은 비일비재하지만 그렇다고 정책조차 무조건 편가름으로만 간다면 그 나라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념의 도구일 수 없는 생명
북한을 탈북한 주민들이 중국의 공안에 잡혀 북송당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지금 갑작스럽게 국내외에서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내색하지 않던 북송자 문제가 박선영국회의원이 단식을 시작하면서 만천하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권이란 인간 삶에 가장 보편적인 권리를 말합니다. 표현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가 그런 것입니다. 사람답게 살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는 그게 없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숫자가 매월 탈북하고 있고 중국에서 한국행의 기회를 노리며 숨죽이고 있습니다. 10만명인지 30만명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숫자의 사람들이 잡히고 도망치고 잡히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물론 강제수용소에서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당하면서 고통고 모욕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지난 2월 24일 부산 성시화 본부 사무총장을 맡은 친구 안용운 목사와 만나면서 우리가 이대로 있어서는 안된다고 했더니 순간 마음이 맞아 둘이 공동대표가 되어 2월 29일 첫 집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4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물론 대부분 교회의 식구들이었습니다. 중국영사관 앞 시위를 작정했지만 근접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서울의 중국대사관 앞에는 매일같이 반대집회가 이어지고 있으나 부산은 그렇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두 번의 모임을 가졌고, 12일 월요일에는 부산역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가지려 합니다. 효순 미선이의 인권에 대해서는 그토록 애절하고 울던 사람들이, 천성산 도룡뇽의 죽음 가능성에 단식하며 국가 재정 수조원의 손해를 입히던 그 사람들은 지금 입도 벙긋하지 않는 희한한 일을 함께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 앞에 이념문제가 끼어들고 있으니 답답하고 한심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짓밟는 것은 창조주께 도전하는 일입니다. 그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행동하는 그리스도인, 나는 우리 성도들이 그런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갈등 충만의 사회
지금 우리 사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것이 아니라 갈등으로 충만합니다. 선거철이 되면서 이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습니다. 이미 2007년도에 노무현 정부에서 결정한 한미 FTA협정이 현 정부 들어 마무리 되었고 3월 15일에는 발효가 됩니다. 그런데도 다시 이 문제를 들고 나서서 갈들을 유발하는 사람들이 정치권의 선두에 서 있습니다. 지난 정부의 총리로서 협정 찬성을 강조하고 선전하던 사람이 갑자기 반대파가 되어 세상을 소란하게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제주도 해군기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이 결정한 일을 자신들이 앞장서서 반대합니다.
이 희한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억지로 반대를 하다 보니 기상천외한 말도 튀어나와 관련자들을 분노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해적기지 건설반대”라고 소리를 지른 젊은 여성의 생트집이 해군참모총장, 전직 해군제독의 마음을 긁어놓았습니다. 고소장이 날아들고, 주먹 쥔 제독의 손이 신문 1면을 장식합니다. 학교 가던 아들이 “아버지 나는 해적의 아들입니까?”라고 엉뚱한 질문을 던졌으니 그 아버지의 마음이 오죽할지 짐작이 됩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갈등이 더 커져갈 것 같아 기분이 좋지 못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일에 관하여 모두가 동일하게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렵습니다. 각기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전원 찬성하는 경우는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성숙한 사람이라면 생각의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를 편가름하는 일은 비일비재하지만 그렇다고 정책조차 무조건 편가름으로만 간다면 그 나라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념의 도구일 수 없는 생명
북한을 탈북한 주민들이 중국의 공안에 잡혀 북송당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지금 갑작스럽게 국내외에서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내색하지 않던 북송자 문제가 박선영국회의원이 단식을 시작하면서 만천하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권이란 인간 삶에 가장 보편적인 권리를 말합니다. 표현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가 그런 것입니다. 사람답게 살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는 그게 없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숫자가 매월 탈북하고 있고 중국에서 한국행의 기회를 노리며 숨죽이고 있습니다. 10만명인지 30만명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숫자의 사람들이 잡히고 도망치고 잡히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물론 강제수용소에서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당하면서 고통고 모욕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지난 2월 24일 부산 성시화 본부 사무총장을 맡은 친구 안용운 목사와 만나면서 우리가 이대로 있어서는 안된다고 했더니 순간 마음이 맞아 둘이 공동대표가 되어 2월 29일 첫 집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4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물론 대부분 교회의 식구들이었습니다. 중국영사관 앞 시위를 작정했지만 근접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서울의 중국대사관 앞에는 매일같이 반대집회가 이어지고 있으나 부산은 그렇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두 번의 모임을 가졌고, 12일 월요일에는 부산역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가지려 합니다. 효순 미선이의 인권에 대해서는 그토록 애절하고 울던 사람들이, 천성산 도룡뇽의 죽음 가능성에 단식하며 국가 재정 수조원의 손해를 입히던 그 사람들은 지금 입도 벙긋하지 않는 희한한 일을 함께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 앞에 이념문제가 끼어들고 있으니 답답하고 한심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짓밟는 것은 창조주께 도전하는 일입니다. 그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행동하는 그리스도인, 나는 우리 성도들이 그런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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