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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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248회 작성일 11-08-13 17:5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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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의 감사
설립부터 감사로
60주년을 맞는 오늘, 나는 구포제일교회의 목사로서 정말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60년의 세월을 보내었다면 영욕이 교차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영광의 세월은 짧고 수욕의 세월은 길기도 하고 길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교회의 설립은 영광이었습니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한 교회의 지도자들이 세운 고려신학교의 영향을 받아 1951년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교회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회개하고 새롭게 되기를 원하는 지도자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 배진택 청년이 있어 그 영광스러운 일이 가능하였습니다. 그에게 용기를 주셔서 구포제일교회를 시작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영광스러운 역사의 계승자가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굳건한 터 위에
개척교회가 늘 그러하듯, 우리 교회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면서 뿌리를 내릴 곳을 찾아다니던 중, 땅값이 그렇게 비싸지 않던 시절에 오늘 우리가 예배하는 399평의 땅을 구입하여 여기까지 자랄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마련하였으니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이곳은 변두리였고 논밭의 한복판이었으나 지금 구포의 한 가운데 자리를 잡은 셈이 되었으니 당시 지도자들이 혜안을 가졌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땅을 얻는 것은 단순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선포의 확실한 중심지를 확보하고, 역사의 평가를 받을 자리를 얻었다는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74년 선친을 따라 이곳으로 왔을 때 우리보다 많은 숫자가 모이던, 우리의 모 교회라고 할 수 있는 106년 된 구포교회는, 구포의 장자교회답게 ‘지역의 유지들도 많다’고 소문이 났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 교회는 가진 것이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숫자도 그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우리교회는 훨씬 큰 에배당을 짓게 되었고, 훨씬 많은 성도들이 모여들어 상당기간 동안 실질적인 구포지역 장자교회가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물론 지금 눈에 보이는 자리는 그 후에 급격하게 성장한 다른 몇몇 교회에 내어 주었지만, 그 때 닦은 터 위에서 여전히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음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지속적인 영광을 위하여
개인이나 공동체나 가릴 것 없이 처음의 생각과 의도, 처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무 약하여 자신이 받은 은혜를 금방 잊어버리고 쉽게 자세를 흩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60년을 한결같이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온 우리 배 장로님처럼, 때로 무너지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나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서 헌신하기를 쉬지 않는 어떤 집사님처럼, 연약한 자신을 거듭거듭 주께 맡기며 하늘의 영광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우리와 다음 세대의 사명입니다.
60주년을 맞는 저와 우리 성도들이 한국교회의 험악한 역사를 기억하며, 조상들이 살아온 아름다운 삶을 가슴에 새겨 멋진 내일을 항조해가기를 다짐하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60년의 감사
설립부터 감사로
60주년을 맞는 오늘, 나는 구포제일교회의 목사로서 정말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60년의 세월을 보내었다면 영욕이 교차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영광의 세월은 짧고 수욕의 세월은 길기도 하고 길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교회의 설립은 영광이었습니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한 교회의 지도자들이 세운 고려신학교의 영향을 받아 1951년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교회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회개하고 새롭게 되기를 원하는 지도자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 배진택 청년이 있어 그 영광스러운 일이 가능하였습니다. 그에게 용기를 주셔서 구포제일교회를 시작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영광스러운 역사의 계승자가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굳건한 터 위에
개척교회가 늘 그러하듯, 우리 교회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면서 뿌리를 내릴 곳을 찾아다니던 중, 땅값이 그렇게 비싸지 않던 시절에 오늘 우리가 예배하는 399평의 땅을 구입하여 여기까지 자랄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마련하였으니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이곳은 변두리였고 논밭의 한복판이었으나 지금 구포의 한 가운데 자리를 잡은 셈이 되었으니 당시 지도자들이 혜안을 가졌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땅을 얻는 것은 단순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선포의 확실한 중심지를 확보하고, 역사의 평가를 받을 자리를 얻었다는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74년 선친을 따라 이곳으로 왔을 때 우리보다 많은 숫자가 모이던, 우리의 모 교회라고 할 수 있는 106년 된 구포교회는, 구포의 장자교회답게 ‘지역의 유지들도 많다’고 소문이 났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 교회는 가진 것이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숫자도 그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우리교회는 훨씬 큰 에배당을 짓게 되었고, 훨씬 많은 성도들이 모여들어 상당기간 동안 실질적인 구포지역 장자교회가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물론 지금 눈에 보이는 자리는 그 후에 급격하게 성장한 다른 몇몇 교회에 내어 주었지만, 그 때 닦은 터 위에서 여전히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음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지속적인 영광을 위하여
개인이나 공동체나 가릴 것 없이 처음의 생각과 의도, 처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무 약하여 자신이 받은 은혜를 금방 잊어버리고 쉽게 자세를 흩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60년을 한결같이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온 우리 배 장로님처럼, 때로 무너지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나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서 헌신하기를 쉬지 않는 어떤 집사님처럼, 연약한 자신을 거듭거듭 주께 맡기며 하늘의 영광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우리와 다음 세대의 사명입니다.
60주년을 맞는 저와 우리 성도들이 한국교회의 험악한 역사를 기억하며, 조상들이 살아온 아름다운 삶을 가슴에 새겨 멋진 내일을 항조해가기를 다짐하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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