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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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622회 작성일 11-04-0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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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추억
어린 시절 비가 오는 날은 귀찮았다. 우산을 들어야 하고 비를 맞기도 해야 한다. 그 때 우산은 값싼 비닐로 만든 것이어서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면 뒤집어지고도 하고 우산살이 부러지기도 하였다. 베 우산도 마찬가지였다. 우산이 시원찮기도 하고 객기도 있어 우리는 비가 그렇게 많이 오지 않는 날이면 그냥 냅다 내달렸다. 질퍽거리는 길을 쏜살같이 달려 학교를 오가는 맛도 괜찮은 것이었다. 물에 흠뻑 젖은 꼴이 우습기도 하였지만 어린 시절 돌아보니 그게 우리들만이 누린 낭만이었다.
비 오는 날 좋은 것도 있었다. 귀찮기는 하지만 비가 오면 뭔가 운치가 있었다. 비가 오면 마당의 움푹 패인 곳에는 물이 고이고 그러면 우리는 종이배를 만들어 거기에 띄우며 놀았다. 물론 당시에는 모든 것이 놀이감이었고 놀이터였지만 비 오는 날은 우리에게 좋은 놀이터를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학교에 갔다 오면서 물이 고인 곳을 발로 내리치면 물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흙탕물에 옷을 버리기도 하고 심지어 얼굴에까지 묻기도 하였다. 우리는 그 일이 마냥 즐거웠다. 물론 엄마는 늘 옷 씻기에 바빴다.
무엇보다 비 오는 날에는 먹을 것이 생겨 좋았다. 아버지는 비가 오는 날이면 어머니에게 넌지시 말씀하신다. “오늘 뭐 먹을 것 없나?” 그렇게 하시면 어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셔서 ‘지짐’을 붙일 준비를 하신다. 아버지는 부침개를 그렇게 좋아하셨고, 매운 고추가 섞인 부침개는 비 오는 날 너무 좋은 간식이었다. 어느 새 나도 아버지를 닮아 비만 오면 부침개 생각이 절로 난다. 그런데 요즘은 비가 오는 날 함께 앉아 그걸 만들어 달라고 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 그만큼 오늘 우리의 삶에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비 오는 날의 추문
내 어린 시절 내린 비는 이렇게 여러 가지 아름다운 사연을 담아주었다. 그런데 지난 주간 목요일 금요일에 내린 비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비 앞에 사람들이 쩔쩔맸다. 비 조금 온다고 학교를 휴교해도 좋다고 하고, 심지어는 직장을 그만 둔 사람도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임신부들은 매우 위험을 느껴 아예 집에 일찍 들어앉기로 한다는 것이다.
일본에 닥친 지진과 쓰나미로 원자력 발전소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원자로가 냉각되지 않아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사용하고 있다. 원자로 식히느라 물을 마구 부었다가 이제 방사능으로 오염된 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어 안절부절하고 있다. 결국 바다로 흘러보낼 방법밖에 없다하여 그냥 방류를 하니 수산업자들이 초죽음이 되고 있다. 수산시장이 폐장을 해야 할 판이니 한가지 재앙이 수많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위대한 일본을 노래하던 일본인들의 꼴이 말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우리나라를 철저히 외면하면서 세우고자하는 일본의 그 알랑한 자존심. 애처롭기까지 하다.

자유로 가는 사순절
인간의 정서를 촉촉이 축여주는 비까지 피하게 된 세상. 마음대로 잡아서 먹던 생선을 밥상에 올릴 수 없는 세상. 괜찮다는 정부의 발표도 못 믿겠다며 비옷 방독면, 미역 다시마 파래를 마구 사들이는 주부들이 우굴대는 세상. 지금 우리는 스스로 가질 수 있는 자유가 별로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큰소리쳐온 나날이 부끄럽지 않은가? 이 사순절에 조용히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생명 내놓으신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음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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