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해야 정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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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205회 작성일 11-08-06 18:07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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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해야 정상입니다
해방, 그 후유증
다음주일은 해방기념 주일인 동시에 우리 교회가 설립된 지 만 60년이 됩니다. 당시 날짜로는 1951년 8월 12일이 었습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방 기념주일에 교설립된 교회! 누가 의도적으로 기획한 것은 아님이 분명한데 날짜는 매우 잘 선택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교회는 해방된 지 6년이 지났지만 많은 문제를 안은 채 소위 ‘해방 후유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일제는 우리나라를 지배하면서 철저하게 이 땅을 일본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은 조선의 일본화 작업에 몰입하였습니다. 상투를 자르게 하고 창씨개명(創氏改名)을 하도록 몰아갔고 일본군인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러다가 조선의 일본화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신사참배를 강요하였습니다. 그 결과 ‘가미나다’라는 일본의 우상단지를 교회당 안 동편에 두고 그것을 향하여 예배하였습니다. 기도, 소원간구, 찬양-손뼉, 예물바치기, 황국신민서사 낭독 등의 순서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전에 1부 신도예배를 먼저 드리게 했습니다. 주일 예배 중에 12시 정오 사이렌 소리가 나면 동쪽을 향해 절하는 동방요배를 드리게 했습니다.
제일 기가 막히는 것은 서울의 한강, 부산의 송도 앞바다와 호수에서 일본 귀신 천조대신의 이름으로 일본 중들이 집례하는 ‘미소기바라이’라는 신도침례를 받기까지 하였습니다. 신도침례는 ‘천조대신보다 더 높은 신은 없다’고 고백한 사람에게 베풀어졌고, 한국교회는 ‘천조대신이 높으냐, 여호와 하나님이 높으냐?’하는 질문에 천조대신이 더 높다고 하는 문건에 서명을 하여 관청에 제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일본은 마침내 한국교회의 모든 교회를 하나로 묶어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으로 통합해 버렸습니다. 한국교회는 없어지고 일본교회의 한 분파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모든 교단 대부분의 목사 장로들은 총회를 통해 일본의 요구에 동의하고 승인하고 그 요구대로 따라다녔습니다. 역사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흥분한 사람들의 ‘고신 진리 운동’
이런 세월을 보냈으니 해방 후에 후유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본의 강요를 목숨 걸고 거부하다 감옥에 갇혔던 성도들이 출옥하면서 시류에 순응했던 사람들과 자연히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설교와 공식기도 중지 등 ‘행동하는 자숙’을 요청한 출옥성도들의 요구가 묵살되자 흥분한 성도들로부터 교회의 성결을 외치는 ‘고신 진리 운동’이 일어난 것은 피할 수 없는 한국교회 정화과정의 일환이었습니다. 구포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배진택 장로님께서 전쟁이 한창이던 그해에 다른 다섯 분과 함께 우리 구포제일교회를 따로 세운 것은 바로 그 결과였습니다. 역사학자들 가운데 혹자는 그 참혹한 한국전쟁 중에 교회가 분열된 것을 두고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현장을 알 수 없을 때 하는 소리입니다. 우상숭배행위를 회개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을 부정하는 행위이므로 갈라설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가 교회설립 60주년을 맞았는데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 아름다운 교회의 역사 속에 길게, 혹은 짧게 함께 했던 형제자매들을 초청한다는 데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끼리만 아니라 이 지역사회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교통문화를 일구어가도록 캠페인을 벌이며 함께 손을 잡고 북구의 대로를 걷기도 하고, 자전거로 달릴 일은, 생각만 해도 흥분되지 않습니까? 따라서 혹시라도 ‘우리 목사님은 8월 둘째 주일이 자기 생일이니까 저렇게 좋아한다(!)’고 속으로라도 옹알거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때로 한없이 흥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그런 사람을 보시며 하나님께서도 환하게 웃으실 것입니다.
흥분해야 정상입니다
해방, 그 후유증
다음주일은 해방기념 주일인 동시에 우리 교회가 설립된 지 만 60년이 됩니다. 당시 날짜로는 1951년 8월 12일이 었습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방 기념주일에 교설립된 교회! 누가 의도적으로 기획한 것은 아님이 분명한데 날짜는 매우 잘 선택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교회는 해방된 지 6년이 지났지만 많은 문제를 안은 채 소위 ‘해방 후유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일제는 우리나라를 지배하면서 철저하게 이 땅을 일본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은 조선의 일본화 작업에 몰입하였습니다. 상투를 자르게 하고 창씨개명(創氏改名)을 하도록 몰아갔고 일본군인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러다가 조선의 일본화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신사참배를 강요하였습니다. 그 결과 ‘가미나다’라는 일본의 우상단지를 교회당 안 동편에 두고 그것을 향하여 예배하였습니다. 기도, 소원간구, 찬양-손뼉, 예물바치기, 황국신민서사 낭독 등의 순서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전에 1부 신도예배를 먼저 드리게 했습니다. 주일 예배 중에 12시 정오 사이렌 소리가 나면 동쪽을 향해 절하는 동방요배를 드리게 했습니다.
제일 기가 막히는 것은 서울의 한강, 부산의 송도 앞바다와 호수에서 일본 귀신 천조대신의 이름으로 일본 중들이 집례하는 ‘미소기바라이’라는 신도침례를 받기까지 하였습니다. 신도침례는 ‘천조대신보다 더 높은 신은 없다’고 고백한 사람에게 베풀어졌고, 한국교회는 ‘천조대신이 높으냐, 여호와 하나님이 높으냐?’하는 질문에 천조대신이 더 높다고 하는 문건에 서명을 하여 관청에 제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일본은 마침내 한국교회의 모든 교회를 하나로 묶어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으로 통합해 버렸습니다. 한국교회는 없어지고 일본교회의 한 분파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모든 교단 대부분의 목사 장로들은 총회를 통해 일본의 요구에 동의하고 승인하고 그 요구대로 따라다녔습니다. 역사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흥분한 사람들의 ‘고신 진리 운동’
이런 세월을 보냈으니 해방 후에 후유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본의 강요를 목숨 걸고 거부하다 감옥에 갇혔던 성도들이 출옥하면서 시류에 순응했던 사람들과 자연히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설교와 공식기도 중지 등 ‘행동하는 자숙’을 요청한 출옥성도들의 요구가 묵살되자 흥분한 성도들로부터 교회의 성결을 외치는 ‘고신 진리 운동’이 일어난 것은 피할 수 없는 한국교회 정화과정의 일환이었습니다. 구포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배진택 장로님께서 전쟁이 한창이던 그해에 다른 다섯 분과 함께 우리 구포제일교회를 따로 세운 것은 바로 그 결과였습니다. 역사학자들 가운데 혹자는 그 참혹한 한국전쟁 중에 교회가 분열된 것을 두고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현장을 알 수 없을 때 하는 소리입니다. 우상숭배행위를 회개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을 부정하는 행위이므로 갈라설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가 교회설립 60주년을 맞았는데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 아름다운 교회의 역사 속에 길게, 혹은 짧게 함께 했던 형제자매들을 초청한다는 데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끼리만 아니라 이 지역사회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교통문화를 일구어가도록 캠페인을 벌이며 함께 손을 잡고 북구의 대로를 걷기도 하고, 자전거로 달릴 일은, 생각만 해도 흥분되지 않습니까? 따라서 혹시라도 ‘우리 목사님은 8월 둘째 주일이 자기 생일이니까 저렇게 좋아한다(!)’고 속으로라도 옹알거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때로 한없이 흥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그런 사람을 보시며 하나님께서도 환하게 웃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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