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투항?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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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구 댓글 0건 조회 3,968회 작성일 09-12-17 20:29본문
노사는 적대관계?
철도노조의 파업이 끝이 났습니다. 철도공사 손해가 90억이고 연관된 산업체들의 손해를 따지면 6,000억이 된다는 알듯말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어쨌거나 파업을 하면 손해를 본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제 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부가 연결되어 있어서 한 기업체나 한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다른 기업체나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습니다. 영향의 크기는 다르지만 영향을 전혀 주지 않는 사람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팔일 만에 끝났다는 소식을 들으며 놀랐습니다. 그렇게 큰소리치며 당당하게 시작하던 파업이 어떻게 그리 쉽게 끝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그 이유가 드러납니다. 민심이 싸늘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로 떠올랐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그 중심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 실력 있고 잘 준비된 수많은 젊은이들이 직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직장이 보장된 공기업의 직원들이 파업을 하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습니다. 철도노조원들이 현재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의 형편을 헤아린다면 파업이라는 극단적 행동에 나설 수가 없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은 회사의 형편을 살펴 적자가 심해지고 상황이 좋지 않으면 당연히 회사를 살릴 궁리를 해야 하고, 노조원들에게도 새로운 요구를 해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경영의 기본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회사의 요구에 무조건 파업으로 맞서면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회사와 노조는 서로의 형편을 살피고 서로를 위하여 염려하고 도우려 할 때 비로소 서로 살아남을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은 너무나 뻔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셈인지 우리나라 기업들은 사용자와 노동자가 항상 적대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니 도대체 나 같은 사람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백기투항? 아니지요
때로 집안 식구라도 싸울 경우가 있습니다. 의견이 맞지 않다고 집을 뛰쳐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집안이라면 차분히 따져보고 우선순위를 확실히 하여 의견을 조정합니다. 아니면 아버지가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가정을 이끌어 가는 방향을 분명히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합니다. 시간만 흐르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과 함께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서로 희생하고 섬기는 자세를 갖추는 것입니다. 서로 섬기려하면 서로를 배려하게 되고 서로를 배려하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니 싸우거나 폭력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신문들이 철도노조의 파업종료를 두고 지나치게 말하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철도파업 8일만에 \"백기 투항\"”, “민노총 강경투쟁 14년만에 첫 완패” 이런 헤드라인 기사는 너무 자극적입니다. 삶의 문제를 두고 승과 패로 몰고 가는 것은 무리한 일입니다. 신문 방송은 노조의 요구사항이 지나치다거나 상황파악에 실패했다거나 혹은 시대의 흐름에 무지한 측면이 있으면 그것을 지적하고 올바른 운동이 되도록 조언하는 선에서 그쳐야지 지나치게 자존심을 건드리면 모두에게 손해가 될 뿐입니다.
주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통하여 강도만난 자를 못 본채 한 제사장을 비난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인가’를 물으셨습니다. 남이 한 일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할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교회가 성탄과 새해를 맞으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섬김의 삶, 우리가 마땅히 찾아야 할 길이 아닌가 합니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끝이 났습니다. 철도공사 손해가 90억이고 연관된 산업체들의 손해를 따지면 6,000억이 된다는 알듯말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어쨌거나 파업을 하면 손해를 본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제 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부가 연결되어 있어서 한 기업체나 한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다른 기업체나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습니다. 영향의 크기는 다르지만 영향을 전혀 주지 않는 사람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팔일 만에 끝났다는 소식을 들으며 놀랐습니다. 그렇게 큰소리치며 당당하게 시작하던 파업이 어떻게 그리 쉽게 끝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그 이유가 드러납니다. 민심이 싸늘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로 떠올랐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그 중심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 실력 있고 잘 준비된 수많은 젊은이들이 직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직장이 보장된 공기업의 직원들이 파업을 하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습니다. 철도노조원들이 현재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의 형편을 헤아린다면 파업이라는 극단적 행동에 나설 수가 없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은 회사의 형편을 살펴 적자가 심해지고 상황이 좋지 않으면 당연히 회사를 살릴 궁리를 해야 하고, 노조원들에게도 새로운 요구를 해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경영의 기본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회사의 요구에 무조건 파업으로 맞서면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회사와 노조는 서로의 형편을 살피고 서로를 위하여 염려하고 도우려 할 때 비로소 서로 살아남을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은 너무나 뻔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셈인지 우리나라 기업들은 사용자와 노동자가 항상 적대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니 도대체 나 같은 사람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백기투항? 아니지요
때로 집안 식구라도 싸울 경우가 있습니다. 의견이 맞지 않다고 집을 뛰쳐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집안이라면 차분히 따져보고 우선순위를 확실히 하여 의견을 조정합니다. 아니면 아버지가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가정을 이끌어 가는 방향을 분명히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합니다. 시간만 흐르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과 함께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서로 희생하고 섬기는 자세를 갖추는 것입니다. 서로 섬기려하면 서로를 배려하게 되고 서로를 배려하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니 싸우거나 폭력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신문들이 철도노조의 파업종료를 두고 지나치게 말하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철도파업 8일만에 \"백기 투항\"”, “민노총 강경투쟁 14년만에 첫 완패” 이런 헤드라인 기사는 너무 자극적입니다. 삶의 문제를 두고 승과 패로 몰고 가는 것은 무리한 일입니다. 신문 방송은 노조의 요구사항이 지나치다거나 상황파악에 실패했다거나 혹은 시대의 흐름에 무지한 측면이 있으면 그것을 지적하고 올바른 운동이 되도록 조언하는 선에서 그쳐야지 지나치게 자존심을 건드리면 모두에게 손해가 될 뿐입니다.
주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통하여 강도만난 자를 못 본채 한 제사장을 비난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인가’를 물으셨습니다. 남이 한 일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할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교회가 성탄과 새해를 맞으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섬김의 삶, 우리가 마땅히 찾아야 할 길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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