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알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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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구 댓글 0건 조회 3,846회 작성일 09-12-2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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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메일 하나를 받았다. 좋은 글을 얻어 보내준 것이다. 짧지만 가슴 뭉클한 글이다.
이전 시대의 아버지들이 어떻게 자녀들을 키워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글이다.
좋은 아버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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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배..\"했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제\" 했다.
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 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알 수가 없다.

-전 경북대 총장 박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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