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산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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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80회 작성일 16-11-22 10:22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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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산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임옥인>. 혹시 우리 시온성가족들은 이 분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한국 신여성 소설가 1세대라고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아름답고 세련된 문체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작품을 주로 쓴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911년 일제 강점기가 시작된 후 태어나 1995년 우리나이 86세로 세상을 떠났으니 대한민국의 굴곡 많은 역사를 몸으로 살아내신 분입니다. 이북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9년 일본 나라[奈良]여자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으니 일찍부터 넓이가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귀국하여 모교인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있을 때 〈문장〉이라는 잡지에 <후처기 後妻記〉를 비롯한 단편들이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고 이름 있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일반적으로 소개해서는 임옥인씨가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다.
“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에/골마다 흘러간다 맑은 물줄기/황금빛 논과 밭에 풍년이 왔다/드맑은 하늘가에 노래 퍼진다/눈이 닿은 우주공간에/손이 닿은 구석구석에/우리 주님 주신 열매/우리 주님 주신 알곡/감사하자 찬송하자/감사하자 찬송하자.”
오늘 아침 예배 첫 곳으로 우리가 부를 찬송 592장을 작사하신 분이 바로 임옥인씨입니다. 이 시는 한국교회 성도들이 추수감사절에 가장 즐겨 부르는 찬송이 되었습니다. 산마다 불이 타는 듯한 고운 단풍과 골짜기마다 흘러내리는 물줄기, 그리고 풍년을 감사하는 농부들의 기도가 눈에 보이도록 그려놓았습니다. 이 넘치는 감사의 노래를 한 작가가 평생 병마와 싸우면서도 감사를 잃지 않았던 여성 소설가가 바로 임옥인입니다.
그는 숱한 육체적 질병을 이겨내 ‘기적의 사람’으로 불렸습니다. 일곱 살 때 복막염을 앓은 후 폐결핵, 척추카리에스, 신장염, 맹장염, 뇌졸중 등으로 11차례의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고통으로 얼룩진 자신의 인생을 통해 발견한 것은 놀랍게도 ‘감사’였습니다. 그가 1967년 찬송가위원회로부터 청탁을 받아 ‘산마다 불이 탄다…’를 작사한 것도 수많은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난 생존의 기쁨을 노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무엇보다 생활 전부가 감사였기에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행 14:17)는 말씀을 바탕으로 작사를 하였습니다.
함북 길주가 고향인 임옥인은 일곱 살 때 오빠의 손을 잡고 길주교회 주일학교에 나간 것이 믿음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이후 신앙은 인생의 나침반이었고 고비마다 딛고 일어서게 하는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64세의 임옥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역시 작가인 남편 방기환이 흐느끼면서 “내 수명에서 15년을 떼어 우리 할매에게 얹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 기도가 통했는지 임옥인은 기적처럼 소생했고 구원의 은혜를 보답하는 길을 찾아 고학생이나 고아들을 친자식처럼 돌봤습니다. 그들은 장로, 목사, 선교사, 작가, 교사,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한 무기수를 9년간 면회하며 신앙을 심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평소 “주님의 은혜로 덤으로 산다”고 말했습니다. 입버릇처럼 “예수님은 폐품 이용에도 능하신 분이다. 이토록 쓸데없는 육신을 이리 꿰매고 저리 꿰매고 계속 사용하시니…”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전에는 이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다가 마음으로 보았고, 이제는 영의 눈으로 봅니다. 기도의 샘에 침잠해서 하나님과 만날 때 놀라운 기쁨이 넘쳐납니다. 견딜 수 없이 슬플 때, 괴로울 때,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내 곁에서 대답하시는 음성을 순간순간 듣고 있습니다.” 이 감사절에 우리보다 더 힘들게 살다간 시인의 노래가 우리 자신의 찬송으로 울려나기를 소망합니다.
“불타는 산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임옥인>. 혹시 우리 시온성가족들은 이 분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한국 신여성 소설가 1세대라고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아름답고 세련된 문체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작품을 주로 쓴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911년 일제 강점기가 시작된 후 태어나 1995년 우리나이 86세로 세상을 떠났으니 대한민국의 굴곡 많은 역사를 몸으로 살아내신 분입니다. 이북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9년 일본 나라[奈良]여자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으니 일찍부터 넓이가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귀국하여 모교인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있을 때 〈문장〉이라는 잡지에 <후처기 後妻記〉를 비롯한 단편들이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고 이름 있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일반적으로 소개해서는 임옥인씨가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다.
“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에/골마다 흘러간다 맑은 물줄기/황금빛 논과 밭에 풍년이 왔다/드맑은 하늘가에 노래 퍼진다/눈이 닿은 우주공간에/손이 닿은 구석구석에/우리 주님 주신 열매/우리 주님 주신 알곡/감사하자 찬송하자/감사하자 찬송하자.”
오늘 아침 예배 첫 곳으로 우리가 부를 찬송 592장을 작사하신 분이 바로 임옥인씨입니다. 이 시는 한국교회 성도들이 추수감사절에 가장 즐겨 부르는 찬송이 되었습니다. 산마다 불이 타는 듯한 고운 단풍과 골짜기마다 흘러내리는 물줄기, 그리고 풍년을 감사하는 농부들의 기도가 눈에 보이도록 그려놓았습니다. 이 넘치는 감사의 노래를 한 작가가 평생 병마와 싸우면서도 감사를 잃지 않았던 여성 소설가가 바로 임옥인입니다.
그는 숱한 육체적 질병을 이겨내 ‘기적의 사람’으로 불렸습니다. 일곱 살 때 복막염을 앓은 후 폐결핵, 척추카리에스, 신장염, 맹장염, 뇌졸중 등으로 11차례의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고통으로 얼룩진 자신의 인생을 통해 발견한 것은 놀랍게도 ‘감사’였습니다. 그가 1967년 찬송가위원회로부터 청탁을 받아 ‘산마다 불이 탄다…’를 작사한 것도 수많은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난 생존의 기쁨을 노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무엇보다 생활 전부가 감사였기에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행 14:17)는 말씀을 바탕으로 작사를 하였습니다.
함북 길주가 고향인 임옥인은 일곱 살 때 오빠의 손을 잡고 길주교회 주일학교에 나간 것이 믿음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이후 신앙은 인생의 나침반이었고 고비마다 딛고 일어서게 하는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64세의 임옥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역시 작가인 남편 방기환이 흐느끼면서 “내 수명에서 15년을 떼어 우리 할매에게 얹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 기도가 통했는지 임옥인은 기적처럼 소생했고 구원의 은혜를 보답하는 길을 찾아 고학생이나 고아들을 친자식처럼 돌봤습니다. 그들은 장로, 목사, 선교사, 작가, 교사,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한 무기수를 9년간 면회하며 신앙을 심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평소 “주님의 은혜로 덤으로 산다”고 말했습니다. 입버릇처럼 “예수님은 폐품 이용에도 능하신 분이다. 이토록 쓸데없는 육신을 이리 꿰매고 저리 꿰매고 계속 사용하시니…”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전에는 이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다가 마음으로 보았고, 이제는 영의 눈으로 봅니다. 기도의 샘에 침잠해서 하나님과 만날 때 놀라운 기쁨이 넘쳐납니다. 견딜 수 없이 슬플 때, 괴로울 때,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내 곁에서 대답하시는 음성을 순간순간 듣고 있습니다.” 이 감사절에 우리보다 더 힘들게 살다간 시인의 노래가 우리 자신의 찬송으로 울려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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