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한국선교역사탐방[4]- ST.Mary Church(앵글리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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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421회 작성일 17-05-23 15:45본문
성매리교회는 1850년에 지역사람들이 세운 교회입니다.
헨리조셉 데이비스 선교사가 자랐던 모교회 입니다.
노예해방운동가였던 영국의회 월버포스의 조카인 조지 스티븐가족이 중심이되어 시작된 교회입니다.
교회 설립이후 30년간은 중요한 선교사역이 이루어졌습니다.
"마:28장 말씀으로 모든능력을 주셨으니 가라! 가서 수십만의 호주원주민과 인도사람들의 가교가 되어라"는
선교적 사명을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들에게 메카슨 목사님은 강조했습니다. 그리하여 1901년 호주 국가가
독립되기전인 19세기 말 부터 빅토리아주 많은 청년들이 복음을 들고 인도와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중국으로 파송된 두 자매선교사가 중국에서 피살당한 일이 있었으나 그 소식을 들은 과부였던 어머니가
딸들의 뒤를 이어 중국선교사로 떠나 사역을 마치고 두 딸과 함께 묻혔습니다. 이교회를 통해 유대인과
중국, 인도, 호주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헨리조셉 데이비스(1856년생)의 누나인 사라(1853년생)는 20세에 호주가 파송한 최초의 선교사였습니다.
데빗도 20세에 첫 선교지인 인도로 파송되었습니다. 병이 들어 호주로 귀국하여 어려운 학생들에게 대학을
진학할 수 있는 학교로 1881년 25세의 나이에 '코필드 그램마스쿨'을 세워 교장으로 섬겼습니다.
다시 인도선교로 갈 계획이었으나 한국에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선교잡지를 읽고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고자
누나 메리(사라)와 함께 1889년 23세의 나이에 한국으로 파송되어 한국최초의 호주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앵글리칸 처치인 매리처치에서는 당시 영국의 식민지로써 영국의 허락을 받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여
매리처치에서 장로교회인 투락교회를 통해 장로교회 선교사로 파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데빗 선교사의 4남매는 모두가 선교사로 사명을 다한 형제들이었습니다.
지금도 무슬림 선교를 위해 사명을 다하고있는 이교회는 이란사람 100명이 이슬람을 떠나 신앙생활을 하는데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최근에도 이교회 목사님 한분이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떠났다고 합니다.
"오늘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눌수 있도록
주님 다시 오실때 까지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매리 처치 담임 목사님이 우리에게 남긴 부탁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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